복음주의 대각성 연합회
 
 
 

이 시대의 희망은 진정한 복음에 근거한 종교개혁

그 이상의 개혁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노병기 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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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 1
최용환    2011-04-07 00: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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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방식1  

은혜의 방식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렘 6:14).


하나님은 한 민족이나 백성에게 충실하고 성실하며 믿음이 고결한 종들을 주시는 것 이상의 복을 베푸실 수 없듯이, 하나님이 이 세상 어느 백성에게 베푸실 수도 있을 최악의 저주는 눈멀고, 갱생하지 않고, 미지근하며, 섣부른 길잡이를 주시는 것이다.


더욱이 어느 시대에 있어서나, 양의 옷을 입은 많은 이리들이, 회칠을 한 많은 자들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보다도 더 부드러운(또는 ‘아첨하는’ : 역자) 말로 예언하는 것을 우리는 안다. 지난날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하며 그 말씀으로 속이는 자들이 많다.


어떤 의미로는, 예레미야 시대에도 마차가지였다. 자기를 불러 쓰신 주 하나님께 충실했던 예레미야는 때때로 그들을 반박하지 않는 법이 없었고 그가 때때로 의지하여 말했던 하나님의 영광에 대하여 반드시 고귀한 증거를 하였다. 그의 예언을 읽어보면 예레미야만큼 세속적인 종들을 비난한 사람도 없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특히 본문이 있는 6장에서 그의 아주 가혹하게 비난을 한다--그는 몇 가지 범죄를 들어 그들을 비난한다. 특히, 그는 탐욕을 들어 그들을 비난한다. 13절을 보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람하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그리고 이어서, 그는 본문을 통해 보면, 더욱 상세하게 그들이 거짓을 행한 내력을, 그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등쳐먹는 방법을 자세히 밝히고 있다.


그는 말한다.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가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백성들에게 전쟁을 경고해 왔었고 그들의 집이 황폐해질 것이라고 말해왔으며, 주께서 확실히 그 땅을 전쟁으로 심판하시리라고 예언해 왔다.


11절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분노가 내게 가득하여 참기 어렵도다. 그것을 거리에 있는 아이들과 모인 청년들에게 부으리니 지아비와 지어미와 노인과 늙은이가 다 잡히리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그 땅 거민에게 내 손을 펼 것인즉 그들의 집과 전지와 아내가 타인의 소유로 이전되리니.” 예레미야 선지자가 두려운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그들의 두렵고 놀란 나머지 회개할 수 있는 마음과 자세를 갖추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제사장들이 돌아다니면서 백성들의 뉘우치는 마음을 눌러버리고 있었으며, 백성들이 충격을 받거나 두려워하면, 그들은 백성들에게 예레미야는 열광적인 전도자일 뿐이며 전쟁 같은 것을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백성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달랬고, 예레미야가 평강이 없다고 말하는데도 평강하다, 평강하다(‘평안하다, 평안하다’, 또는  ‘괜찮다, 괜찮다’)고 발림 말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말씀은 기본적으로 밖으로 나타난 일들을 지적하고 있으나 나아가서 인간의 심령 상태를 지적하고 있기도 하다는 것을 나는 진정 믿는다. 다시 말해서 그 말씀은 백성들이 죄를 뉘우치기 시작하고 하늘을 향해 소망을 돌리기 시작하였을 때, 백성들의 뉘우치는 마음을 억누르고 백성들이 착하기만 했다고 사탕발림을 했던 거짓 교사들을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과연 백성들은 대개 그런 말을 솔깃해하는 법이다.


우리 인간의 마음은 너무 속임수에 능하고 지독하게 악하다.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만이 인간이 얼마나 믿을 수 없는 존재인가를 아신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평화가 없는데, 자기 자신에게 ‘평화롭다, 평화로다’라고 말하고 있는가!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서,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 생각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흥미를 느낀다고 발림말을 하고 있는가!


그들의 일상의 경험을 검토해 보면, 그들이 평화라고 떠벌이는 것은 악마가 만드는 평화일 따름임을 알게 되기 때문에--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가 아니다--그들이 말하는 평화는 사람이 정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평화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자신의 마음으로 평화를 말할 수 있느냐를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우리는 다 평화를 갈망한다. 평화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복이다. 평화 없이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사람들은 때때로 자신에게 평화롭다고 말할 수 있기 전에, 자신이 어디까지 가야 하며, 스스로 무엇을 먼저 해야 할 것인가를 배워야 할 것이다.


내가 지금 뜻하는 바는, 나의 영혼을 구하고 내가 설교하고 있는 자들의 피를 흘릴 염려가 없게 되어 하나님의 온전한 권고를 선포하는데 부족함이 없게 하는 것이다. 나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 여러분에게 스스로 평안하다고 말할 수 있기 전에 무엇을 체험해야 하며, 무슨 일을 행해야 하는가를 보여 주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을 직접 하기 전에, 한두 가지 주의할 사항을 전제하겠다. 첫째, 나는 여러분이 종교란 내적인 것이라고 믿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여러분은 종교가 마음속에 일어나는 일이며, 하나님의 성령의 권능으로 영혼의 내부에서 행해진 일이라고 믿는다. 만일 여러분이 이것을 믿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성경을 믿지 않는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비록 성경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이것을 믿지 않으면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미워할 것이다. 종교는 성경의 어디를 보거나 사람의 마음속에 행하신 하나의 일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표면적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이 아니요 이면적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이다.”


여러분 중에 종교를 표면적으로 치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의 마음에 맞는 발림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내가 불쌍한 죄인의 마음을 향해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이야기할 때 마치 내가 알지 못하는 방언을 하는 것처럼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한 가지 더 내가 결코 하나님에 대하여, 행위의 한 가지 방법에 한정시켜서 말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전제하고자 한다. 나는 결코, 모든 사람이, 마음의 평화를 누리기 전에, 동일한 수준이 뉘우침을 겪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겠다.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을 돌이키시는 갖가지 방법을 마련하고 계신다. 그의 성령의 바람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불어오는지 모르게 불어온다.


그러나, 아무튼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언제나 여러분이 마음속으로 평화롭다고 말할 수 있기 전에, 여러분의 뉘우치는 기간이 길건 짧건, 신랄하건, 조용하건, 여러분은 내가 이어서 말하게 될 일을 반드시 겪게 된다는 사실이다.


첫째, 여러분이 자기 자신의 마음속에서 평화롭다고 말할 수 있기 전,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의 율법을 실제로 거역한 허물들을 보고, 느끼고, 슬퍼하고, 통곡해야 한다. 하나님이 그의 삶을 두고 맹세하신 행위 언약(The Covenrant of Works)에 따르면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고 하셨다. 율법책에 기록한대로 행하지 않는 자는 그가 누구든지 저주를 받는다.


우리는 율법책에 기록된 일 중 어떤 것들을 행해야 할 뿐 아니라 또한 모든 것을 행해야 하며, 언제나 그래야 한다. 그러므로 행위 언약에 의하면, 조금이라도 도덕율을 어기는 것은 생각으로나, 말로나, 행위로나, 하나님의 손에 죽을 수밖에 없게 된다.


만일 한 가지 악한 생각이, 한마디 악한 말이, 한번의 악한 행동이, 영원한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면 인생을 하나님께 거역만 해온 우리 모두에게는 얼마나 많은 지옥이 기다리고 있겠는가! 그러므로, 애당초 마음으로 평화를 말할 수 있기 전에 사시는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를 보아야 하고 믿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는 벗들이여! 마음을 잘 헤아려 살피라. 나는 여러분이 마음을 개선시키기 위하여 이곳을 왔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서 나는 여러분에게 그 때를 아는가 라고 묻고 싶다. 


그리고 만일 여러분이 그 때를 정확히 모른다면 여러분은 언제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괴로운 일을 기록하셨으며, 언제 전능자의 살이 여러분의 몸에 박히었는지를 아는가? 여러분의 죄를 기억하고 비통했던 적이 있었는가? 여러분이 실제로 하나님을 거역한 허물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여러분에게 떨어져 마땅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가?


여러분의 일생 중 자신의 죄 때문에 슬퍼해 본 적이 있었는가? 여러분은 스스로, ‘내 죄가 너무 무거워 머리를 들 수 없구나’라고 탄식해 본 적이 있었는가? 여러분은 이런 뉘우침을 맛보았던 적이 있었는가? 하나님과 여러분의 영혼이 교감하여, 뉘우치는 여러분의 마음이 그에게 상달된 적이 있었던가?


만일 그런 적이 없다면, 부디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지 말라. 여러분은 마음속에 평안하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평화는 없다. 주께서 그의 뜻이라면, 여러분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여러분을 각성시켜 뉘우치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시고, 여러분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빈다.


더욱이, 여러분은 자신의 지은 죄를 깨닫고 놀랄 수가 있다. 그러나 아직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타인일 수가 있으며 여러분의 마음에 진정한 은혜의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항상 여러분이 마음으로 평화를 말할 수 있기 전에 자신의 죄를 깊이 뉘우쳐야 할 것이다.


여러분은 자신이 하나님의 율법을 실제로 거역한 허물을 뉘우쳐야할 뿐 아니라, 여러분의 모든 허물의 바탕까지도 뉘우쳐야 할 것이다. 그러면 허물의 바탕이란 무엇인가? 나는 원죄, 다시 말해서 우리 모두 이 세상에 우리 자신과 더불어 타고난 원죄를 말한다. 그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자기 자신을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원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꾸며대는 불쌍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하나님이 아담의 죄를 우리에게 전가시킨 것을 부당하다고 비난할 것이다.


우리는 짐승의 표와 악마의 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우리가 죄 속에 낳은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한 자들은 세상을 보고 그 무질서를 생각하며, 할 수 있으면,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여 살게 하신 낙원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아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무질서하다. 나는 밖에 나가 있는 동안, 만일 원죄를 논증할만한 것이 따로 없더라도, 늑대와 호랑이가 사람을 공격하는 일, 아니 개가 사람에게 짖어대는 일이 원죄에 대한 하나의 증거라고 생각하곤 했다. 아담의 타락이 없었더라면 호랑이와 사자가 감히 사람을 공격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짐승이 사람을 공격하면 그것은 너희가 하나님께 범죄 하였다고 말해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편에서 악과 싸워야 한다. 만일 우리가 자기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본다면, 많은 탐욕을 보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기질과 정반대되는 사람의 기질을 보게 된다는 말이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교만, 악덕, 원한, 시기와 질투가 들어 있다. 이런 기질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될 수가 없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하나님을 닮았던 형상을 벗어버리고 악마가 된, 우리가 조상 아담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이 이 사실을 부인할지라도, 회개하고 뉘우치는 때가 되면, 모든 세속적인 추론들은 곧 무너져 내리고 저 불쌍한 사람들의 심령이 오염된 모든 죄악의 근원을 느끼기 시작하고 보기 시작한다. 죄인이 처음으로 눈을 뜨면, 내가 어떻게 그처럼 악하게 됐을까하며 의아하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이 갑자기 간섭하고 본래 그에게 선한 것이 없었음을 보여 주신다. 이윽고 그는 자기가 거의 바른 길을 벗어났으며 거의 지겨울 정도의 비참한 죄인이 되었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나서 이 불쌍한 죄인은 하나님의 보좌 아래 꿇어 앉아, 비록 그가 일생에 한 가지 죄도 지은 적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이 자신을 정죄하시고 죽이시더라도 당연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여러분 중에 일찍이 하나님이 여러분 자신을 정죄하시는 것은 정당하다고 인정하고, 여러분이 본래 진노의 자녀였음을 인정하며, 비록 여러분이 일생에 그를 거역한 적이 없는데도 그가 여러분을 죽이실지라도 정당하다고 인정해본 적이 있었는가? 만일 여러분이 진심으로 회개한 적이 있었다면, 만일 여러분이 진심으로 비통한 마음을 가져본 적이 있었다면, 만일 여러분의 자아가 참으로 소멸되었다면, 여러분은 이 사실을 느끼고 깨닫게 되었으리라. 그러므로 만일 여러분이 원죄의 무게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면 자기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내세우지 말라.


자기 자신이 진심으로 원죄를 깨닫는 것이 진심으로 회개한 자가 져야할 가장 무거운 짐이다. 이것은 항상 갱생한 심령을 괴롭히고 성별된 심령을 비통하게 한다. 마음속에 내재하는 죄가 회개한 사람의 멍에(또는 ‘경고’)가 된다. 그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멍에(‘경고’)이다. 그는 끊임없이 ‘아, 이 죽음의 육신으로부터 누가 나를 구할 것인가’라고 소리친다. 내 마음 속에 살아 있는 이 결함으로부터 누가 나를 구할 것인가? 이것이 불쌍한 사람의 마음을 가장 어지럽히는 문제다.


그러므로 만일 여러분이 이 마음의 결함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면,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그 때문에 여러분을 저주해도 당연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였다면, 나의 사랑하는 벗들이여, 여러분은 마음속으로 평화롭다고 할 수 있으나 두렵건데 진정한 평화가 없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더욱이 여러분이 마음속으로 평화를 말할 수 있기 전에 여러분은 자신의 삶의 죄 때문에 괴로워하게 될 것은 물론이요 또한 여러분의 최상의 직책과 성취 때문에도 괴로워하게 될 것이다. 어느 불쌍한 사람이 주를 두려워함으로 어느 정도 죄를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행위 언약(The Covenant of Works) 아래 태어난 존재가 된 것인데, 다시 한 행위의 언약을 향해 곧장 달아나 버린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가 동산 나무들 사이에 숨고 무화과 잎으로 벌거벗은 몸뚱아리를 가린 것 같이, 불쌍한 그 죄인도 자기의 직책과 자기의 성취를 향해 달아나고 하나님을 피해 숨으며 스스로 의를 주워 맞추려고 한다.


그는 말한다. “이제 나는 매우 선해질 거야, 나는 개심할거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거야. 그러면 확실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은혜를 베푸실 거야.” 그러나 여러분은 마음속으로 평화를 말할 수 있기 전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일찍이 올렸던 가장 훌륭한 기도 때문에 여러분을 정죄하실 수도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여러분의 모든 직책, 모든 의가 예레미야 선지자가 격조 높게 표현하고 있듯이 모두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뽐내기에 너무 부족하고, 여러분의 불쌍한 영혼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어떤 동기와 권유가 되기에는 너무 못 미치기 때문에, 하나님이 여러분의 직책과 의를 더러운 걸래 조각, 생리대로 보실 것이며,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호감을 얻기 위하여 여러분의 직책과 의를 그에게 제시하지 않으면 그는 그런 것들을 미워하실 것이며 참을 수 없으시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나의 벗들이여, 우리는 무엇을 성취했다고 하나님께 뽐낼 수 있겠는가? 우리의 인격은 본래 의롭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는 만 번이라도 정죄를 받아 마땅하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여러분은 물질적으로 선을 베풀 수 있다. 그러나 여러분은 어떤 것을 공식적으로 그리고 올바르게 선한 것으로 만들 수 없다. 자연을 그 한계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회심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는 믿음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리고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고 하셨다. 우리가 갱생을 얻은 뒤로도 우리는 부분적으로만 갱생을 얻었을 뿐이므로 내재하는 죄가 여전히 남아 있고 우리가 행하는 직무에는 결함이 섞여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회심한 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일에 따라서 우리를 영접하실 뿐이라면 그는 우리를 정죄하시게 될 것이다. 왜 그러냐하면 우리는 도덕율이 요구하는 것과는 너무 거리가 먼 기도 밖에 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분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오직 죄를 지을 뿐 기도할 수 없고, 나는 오직 죄를 지을 뿐, 설교를 할 수 없으며, 어떤 사람이 표현하듯이, 나의 회개는 되풀이 되고, 나의 눈물은 나의 구세주의 보배로운 피로 씻겨지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말할 수 있다. 우리의 가장 훌륭한 직분들은 무수히 많고 화려한 죄와 같다.


여러분이 마음속으로 평화를 말할 수 있기 전에 여러분은 원죄와 실제적인 죄의 병에 걸려야 하고, 여러분의 모든 직분과 성취의 병에 걸려야 한다. 독선으로부터 벗어나오기 전에 깊은 뉘우침이 있어야 한다. 마음의 교만함을 벗어나지 못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의 앞에 굴복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자기 자신에게 아무 의로운 것이 없었음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면, 만일 여러분이 자기 자신의 의로움에 결함이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면,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올 수 없다. 오늘날 무수한 사람들이 “좋아, 우린 이 모든 것을 믿는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말과 느낌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여러분은 사랑하는 구세주의 필요성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여러분은 자신의 의의 결함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지금 마음속으로, “주여, 제가 성취한 가장 훌륭한 직분 때문에 저를 정죄하셔도 좋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만일 여러분이 이와 같이 자아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면, 마음속으로 평화를 말할 수는 있으나 평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마음속으로 평화를 말하기 전에 여러분이 크게 괴로움을 당해야 할만할 한 가지 특별한 죄가 있다. 그렇지만 나는 여러분 중에 그것이 무엇일까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기독교의 지배적이고 저주 받은 죄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것을 거의, 또는 전혀 생각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것이 무엇인지 기도하라. 그것은 여러분 대다수가 자신은 죄가 없다, 다시 말해서 불신하는 죄가 없다라고 생각하는 그것이다.


여러분이 마음속으로 평화를 말하기 전에 자기 자신의 마음의 불신 때문에 괴로움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 중에 누가 스코틀랜드에, 곧 개신교의 땅에 태어나 주일마다 교회를 다니면서, 바로 이 교회 안에서 자기 자신을 불신자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현대 한국 교회와 교인들에게 ‘불신자’라고 했을 때 누구 들을까? 아마 돌을 던질 것이다-cyh) 1년에 한차례 성찬을 받고(성찬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 성찬의 징포를 받았으며, 가족 기도회를 지키고 있는 여러분 중에, 누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고 상상할 수 있겠는가?


내가 무자비하다고 생각하거나, 내가 여러분 중에 그리스도를 불신하는 자가 있다고 의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기를 호소한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이 대부분 자기 자신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악마만큼도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는 사실이 두렵다.


나는 악마가 대다수의 우리를 보다도 성경을 더 믿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는다. 이 사실은 스스로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많은 사람보다 악마가 성경을 더 잘 믿고 있는 증거다. 아니, 그는 믿고 두려워한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보다 그가 더 확실히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고 있는 증거다.


나의 벗들이여, 우리는 하나의 역사적인 믿음을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마음속에 이룩된 진정한 믿음으로 오해하고 있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이 믿고 있다고 상상하고 있다. 왜 그런가 하면 여러분도 성경이라는 책이 있다는 그 사실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여러분은 교회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지는 않는다. 그리스도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믿을 뿐이며, 성경이라는 책이 있다는 사실을 믿을 뿐, 여러분은 시저나 알렉산더 대왕과 같은 사람이 있었음을 믿는 것 이상으로 선을 행하지 않으려 한다. 성경은 신성한 보고(寶庫)다. 우리에게 이 살아있는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 무슨 말로 감사를 드려야 할까?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을 소유하고 있을 수는 있어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는 않는다.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사시는 하나님의 성령에 힘입어 마음속에 하나의 원리가 심어져야 한다. 내가 만일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지 얼마나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대부분 여러분이 기억하는 한 예수를 믿어 왔다고, 다시 말해서 그릇되게 믿은 적이 없었다고 대답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여러분은 일찍이 모태에서 성별된 것을 제외하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결코 믿지 않았다는 것 이상의 훌륭한 증거를 댈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던 때가 있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한다. 만일 내가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한지 얼마나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기억하는 한, 하나님을 미워했던 기억이 없으며, 하나님을 증오했던 때가 없었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아주 일찍이 모태에서 성별된 사실을 제외하고서는 하나님을 일생에 한번도 사랑해본 적이 없으리라.


나의 벗들이여, 나는 이 문제를 특히 자세히 다루고자 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가장 거짓된 망상이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이미 믿었던 많은 사람들이 넋을 잃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마샬 씨는 자기의 체험을 이야기 하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적하였다. 곧 그는 일생을 일해 왔고, 자기가 지은 죄를 모두 십계명에 따라 정리를 해가지고, 어느 목사에게 가서 ‘왜 내 자신이 평화를 얻을 수 없는가’고 물었다. 그 목사는 그가 작성해온 죄의 목록을 살펴본 다음, ‘당장 나가시오! 나는 당신의 목록에서 죄라는 낱말은 한마디로 발견하지 못 하겠소’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그(보혜사)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세상을 책망하리라.’ 그리고 그리스도는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제, 나의 벗들이여, 하나님이 일찍이 여러분에게 믿음이 없음을 보여주신 적이 있었는가? 여러분이 완고하게 불신하는 마음을 몹시 슬퍼한 적이 있었는가? 여러분은 일찍이 주여, 믿음을 주소서. 주여, 제가 당신을 꼭 붙들게 하소서! 주여, 제가 당신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 부를 수 있게 하소서라고 마음 으로 말한 적이 있었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찍이 여러분에게 이같은 말을 할 수 있는 확신을 주신 적이 있었는가? 그가 일찍이 여러분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음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을 향해 믿음을 주시라고 소리치게 하신 적이 있었는가?


그런 적이 없었다면, 마음 \속으로 평화를 말하지 말라. 주께서 여러분을 일깨어 주시고 죽어서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여러분에게 참되고 확실한 평화를 주시기를 빈다!



한 번 더 말하겠다. 여러분이 마음속으로 평화를 말하기 전에, 여러분은 실제적인 원리와 자기 자신의 의의 죄와 불신의 죄를 확신해야 함은 물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와 충분한 의를 꼭 붙잡을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대한 믿음을 붙들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평화를 얻게 되리라.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모든 사람을 격려하시는 말씀이다. 그러나 쉬게 하시겠다는 약속은 그들이 그에게 와서 믿고 그를 그들의 하나님이요 모든 것으로 확신한다는 조건에 의해서만 유효하다.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기 전에,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으로 의롭게 되며,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의 표준으로 적용하고, 그리스도를 우리 심령의 중심에 모심으로써, 그의 의가 우리의 의가 되며, 그의 공적이 우리의 영혼에 전가되어야 할 것이다.


나의 벗들이여! 여러분은 일찍이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하였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찍이 자기 자신을 여러분에게 주셨는가? 여러분은 일찍이 산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긴밀한 관계를 이루어 여러분의 영혼에 평화를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은 적이 있는가? 일찍이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에 강처럼 흘러들었는가? 여러분은 일찍이 그리스도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평화를 느껴본 적이 있는가? 나는 하나님이 오셔서 여러분에게 평화를 말씀하시기를 기도한다. 이상의 일들을 여러분은 체험해 보아야 한다.


나는 지금 저 세상과 내적인 종교와 불쌍한 죄인의 마음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실상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나는 지금 대단히 중대한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들과 모두 관계가 있고, 여러분의 영혼과 깊은 관계가 있고, 여러분의 영원한 구원하고도 관계가 있다.


여러분은 모두 평화로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악마가 여러분을 세속적인 일에 매몰되게 하고 세속적인 안전에 기울어 잠들게 했을 수도 있으며, 여러분을 지옥에 데려다 놓고 거기서 여러분이 깨어나기까지, 여러분을 그렇게 거짓된 잠에 빠져들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기서 깨어나 너무나 두려운 잘못된 상황에 빠진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일 것이다. 그때 여러분과 영원한 세상과는 넘을 수 없는 큰 심연이 있어서, 여러분이 자신의 혀를 식히려고 한 방울의 물을 애타게 호소하여도 여러분은 영원히 그것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몇 부류의 사람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무한한 자비로 나의 애씀이 바르게 이루어지도록 복을 내시기를 기원한다.


여러분 중에 어떤 이들은 은혜를 통해 우리도 너와 함께 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이여 복을 내리소서! 우리는 우리가 지은 죄를 확신하였고, 우리의 원죄를 확신하였고, 우리의 독선을 확신하였고, 불신의 쓰라림을 느꼈으며, 은혜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가까이 나아갔다.


우리는 마음속으로 평화를 말할 수 있다. 왜 그런가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평화를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여러분도 그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천사들이 그 주일 첫날에(안식 후 첫날) 두 여인에게 말하였듯이 나도 여러분에게 인사를 할 것이다.


모두 큰 소리로 외쳐라! 나의 형제들이여, 두려워 말라. 여러분은 복된 사람들이다. 여러분은 앉아서 평안히 쉬어도 좋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평화를 주셨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섭리의 모든 경륜 아래서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분의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효험은 무엇일까? 여러분은 밖에서 무슨 싸움을 싸우게 될까?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여러분 안에 평화가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긴밀히 사귀었는가? 하나님이 여러분의 친구신가?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친구신가? 그러면 안심하고 위를 바라보라. 모든 것이 여러분의 것이며,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다. 모두가 여러분과 더불어 선을 이룬다. 여러분의 머리카락 한 올까지 헤아린 바 되었다. 무릇 여러분을 범하는 자는 하나님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다(너희를 건드리는 자는 하나님의 눈동자를 건드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의 벗들이여! 여러분의 최초의 회심에 안주하지 말라.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아직 어린 여러분은 한번 숨을 쉴 때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발견하도록 살펴야 할 것이다. 과거의 체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쌓지 말라. 자신의 안에 행해진 일을 바탕으로 자신을 쌓아 올리지 말라. 오히려 언제나 밖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향하여 자기 자신에서 벗어나라. 여러분은 구원의 샘물을 길으러 나오는 죄인처럼 언제나 나와야 할 것이다. 뒤에 있는 것들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들을 향하여 언제나 짓쳐 나아갈 일이다.


나의 벗들이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정하고 긴밀하게 걸어가기만 하라. 우리들 가운데는 거친 걸음으로 서두르다가 평화를 잃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에 다른 무엇인가가 끼어들고 우리는 어두움에 떨어진다. 다른 무엇인가가 우리의 마음을 훔쳐 하나님을 등 돌리게 하고, 이 때문에 성령이 비통한 마음으로 우리를 떠나게 된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권고하겠다.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고 이 평화를 잃지 않도록 조심하라. 만일 여러분이 한번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된다면 여러분은 결코 하나님을 떠날 수가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결국 자기 자신을 떠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더럽게 떨어져서 일생동안 절뚝거리고 다닐 것이다.



배교를 조심하라. 부디 성령을 비통하게 하지 말라. 결코 일생동안 위로를 되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와 긴밀히 사귄 뒤 하나님을 떠나 방랑하지 말라. 나의 벗들이여, 나는 배교를 몹시 안타까워하였다. 우리의 마음은 너무나 약해져서 조심하지 않고 끊임없이 살피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을 속이고, 자기 자신을 속이고, 바른 길을 벗어나게 할 것이다. 욥과 다윗과 성경의 다른 성도들에게 내린 심판이 그것을 증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