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 대각성 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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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상의 개혁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노병기 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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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 1
최용환    2019-04-26 15:4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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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받았다는 표증  

‘성령을 받았다는 표증’(『복음 잔치:오라, 강청하시는 그리스도』, 지평서원, pp.273-290)은 조지 휫필드의 전형적인 구원론 설교다. 당시 그가 밟는 모든 땅에서 이와 같은 설교를 전했다. 주님께서는 그에게 열린 문을 주시어서 적은 능력으로 큰일을 하게 하시었다.
이 설교에서 휫필는 먼저 성령은 누구이시며, 왜 성령을 영접해야만 하는가에 대해 설명한다. 그는 성령은 거룩 자체이며 우리 속에 거룩을 창출하시는 분이라고 소개한다. 그가 실제로 거룩하신 성령님을 체험하고 그 속에서 거룩이 창출되는 것을 경험했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으리라. 로이드 존스가 『청교도 신앙:그 기원과 계승자들』(생명의 말씀사, pp.127-129)에서 말했듯이 그는 중생과 함께 중생하기 전의 사람들의 상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이 설교에서도 잊지 않는다. 휫필드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보시기에 좋았던 사람들이 죄로 인해 엉망이 되었음을 보여주며, 창조 당시의 모습을 회복케 하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오셨음을 입증한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믿고 회개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기 위함이었다. 성령을 받으면 객관적 표증을 얻는데 그는 다섯 가지를 제시한다. 성령을 받은 자는 기도한다. 성령을 받은 자는 고의적으로, 또 습관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 성령을 받은 자는 세상을 이긴다. 성령을 받은 자는 사랑할 줄 알고 사랑한다. 성령을 받은 자는 원수까지도 사랑한다.
설교를 마치면서 그는 세 부류의 사람들에게 권면을 한다. 첫째, 하나님을 멀리하고 죽어 있는 이들에게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회개하여 거듭나라고 한다. 둘째, 구원받았다는 그릇된 소망에 안주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받은 표증이 있는지 살펴보고 없다면 성령을 받기까지 기도하라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지막 날 주님께서 이들을 모른다고 하실 것이 분명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양자의 영”을 받지 못하고 ‘종의 영’에 머물며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용기를 잃지 말고 구하는 자에게 성령(양자의 영)을 주시는 주님 앞에 담대히 나가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성령을 받은 자에게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열심을 내라고 권면한다.

『거룩한 구원』에는 ‘거듭남의 표징’으로 열다섯 가지가 나온다.
1. 예수님에 대한 확실한 신적인 믿음을 갖게 된다
2. 성령의 내적 증거를 갖게 된다
3. 생수의 강 같은 기쁨이 나타난다
4. 놀라운 평안을 체험하게 된다
5.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미하게 된다
6. 신적 성품을 갖게 된다
7. 성령이 임한 사람은 내가 주님 안에 있고 주님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을 자각하게 된다(그리스도와 신비한 연합)
8.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짐으로 하나님과 성도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거듭난 사람의 가장 큰 특징, 가장 중요한 특징)
9. 거듭난 사람은 원수까지 사랑한다
10. 복음적 겸손을 가지게 된다
11. 의를 행하고 범죄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된다
12. 세상을 이긴다
13. 영적 세계를 보게 되며, 하나님의 가르침을 듣게 된다. 즉 영 분별을 하게 된다
14. 복음을 증거하게 된다
15. 거룩한 순종과 실천이 따르게 된다


성령을 받았다는 표증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행 19:2).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해석하는 데 두 가지 다른 견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 주어진 질문이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만난 제자들의 믿음의 확실성을 확인하기 위해서[역주-지금도 영국 국교회에서나 로마 가톨릭에서는 이 확인하는 행위를 ‘CONFIRMATION'(견진)이라고 합니다] 안수를 통해 성령을 받았는가”라고 묻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이 제자들이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한의 세례를 받을 때 즉각적으로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사도가 여기서 그들에게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로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을 받았는지 묻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아니라고 답하자,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그런 다음에 그 믿음의 확증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 두 해석 중 어느 것이 타당한가 하는 문제는 결정하기가 그리 용이하지 않고 꼭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중요한 질문을 의미하고 있으니 문맥을 상관하지 않고 그 말씀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여기서 사도가 언급한 성령이 누구신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참된 신자로 불리기 전에 우리 모두가 성령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둘째로, 우리가 성령을 받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서 성경 구절을 잠시 보려고 합니다.
셋째로 결론적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여러 계층의 사람들에게 사도가 거기서전파한 교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 성령은 누구시며, 왜 성령을 영접해야만 하는가
본문에서 언급된 성령이 누구신지를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불려지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그를 영접해야 된다는 것도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성령은 거룩 자체이며, 우리 속에 거룩을 창출하십니다
여기서 성령은 분명히 성신을 가리키며, 복되신 영원한 삼위일체의 제삼위격이십니다. 성령께서는 아버지와 아들과 동등하게 영원하시고 본질적으로 하나이시며,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오셨고 아버지와 아들과 동등하신 분입니다. 성령을 ‘거룩한 영’이라고 강조해서 부르는 것은 그분 자신이 무한하게 거룩하시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 속에 있는 모든 거룩함의 창출자요 완성자도 되시기 때문입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셨으며, 동정녀에게 임하여 거룩한 아들이 그녀에게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또한 성령께서는 우리 복되신 주님께서 세례를 받고 뭍으로 올라오실 때, 비둘기 같은 모습으로 강링하시고 하셨습니다.
또한 성령께서는 오순절날 모든 사도들의 머리 위에 불의 혀같이 갈리지는 모습으로 임하셨습니다. 바로 이 성령께서 우리 영혼의 표면에 운행하셔야 합니다. 이 지존자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시고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세례를 받아야 하며 회개의 불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의 참된 지체라고 불릴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너의 안에 계신 줄을(곧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 13:5). 로마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사도 요한도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 3:24)라고 말합니다.
우리 주님의 사도들이 처음 성령받을 때는 표적과 기사를 통해서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을 그와 같은 이적적인 방식을 통해서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하게 하시는 은혜 가운데서 성령을 받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사도들도 진실로 그렇게 하였습니다. 세상 끝 날까지 그 일은 계속 될 것입니다.

2) 보시기에 좋았던 사람들이 죄로 인해 엉망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 성령의 역사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관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습니다. 아니면 성경을 기록한 거룩한 기자가 표현한 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창 5:1) 지으셨습니다. 곧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의 성품의 복사본입니다. 전능하신 명령을 발하셔서 세상을 존재하게 하셨던 바로 그분이 생명의 호흡을 사람에게 불어넣으셨고, 사람의 영혼은 놀라울 정도로 하나님의 완전성을 닮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창조 사역의 최종적 마무리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정신적이며 육체적인 세계가 완성된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을 어찌나 빼다 박았던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보시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지 않을 수 없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 중 무생물과 짐승의 창조를 하루하루 마친 다음에 그것이 보기에 좋으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성경에서 읽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닮은 그 사랑스러운 존재인 사람이 만들어졌을 때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말 좋았습니다.
그러니 신의 성품에 참여한 인간이란 존재는 말로 다 할 수 없이 행복했음에 틀림없습니다. 만일 그가 계속 거룩함을 유지하였다면 계속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실과는 임의로 먹을 수 있으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는 금령을 내리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죽음은 육체적인 죽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죽음도 포함합니다. 그 죽음은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고, 하나님께서 사람 속에 불어넣는 영적 생명도 일어버리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행복도 몰수하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나 이런 금령이야말로 무한한 인간의 행복에 비해 매우 쉬운 조건이었다고 상상할 만합니다. 그러나 그 불행한 사람은 마귀에게 유혹을 받고 마귀처럼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과 동등되려는 욕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금지된 실과를 따 먹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 인간은 거짓말하실 수 없는 영원한 하나님께서 인간의 불순종에 대해 미리 경고하셨던 저주를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아담이 타락하자마자 자신이 벌거벗었음을 알고 부끄러워했음을 읽게 됩니다. 그가 벌거벗었다는 것은 자기 몸의 상태뿐만 아니라 그 전에 영혼을 감싸고 아름답게 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몽땅 읽어버리고 빈곤한 상태에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눈에 보이는 피조물의 세계가 그 일로 인해서 불행한 반란과 무질서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에는 땅을 덮지 않았던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것들은 바로 혼돈과 배역을 보여 주는 가련한 상징들이며 생명 없음을 나타내는 표징들이었습니다. 또한 여러 가지 정욕과 욕심이 일어나 타락 즉시 인간의 영혼을 뒤덮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 아닙니다. 오직 마귀의 죄를 본받아 마귀의 성품에 참여한 자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 직접적으로 대적하는 원수의 상태에 함께 빠져들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무서운 무질서의 상태에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그러하니 그 가지들도 동일하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아담이……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창 5:3)라는 말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담이 금지된 실과를 따 먹은 후에 가지게 되었던 바로 그 부패한 성품을 가진 아들을 낳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구절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역시 다 함께 죄와 부패 속에서 태어났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상태에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습니다. 빛이 어둠과 교제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자녀들과 어떠한 고통도 나눌 수 없는 것입니다.

3) 창조 당시의 모습을 회복케 하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어째서 육체를 입고 나타나셨는지 그 목적과 의도를 발견합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무질서에 종지부를 찍고, 우리가 처음 창조되었을 대의 그 본래의 존영을 되찾게 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를 위해서 아버지의 공의를 만족시키려고 보배로운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런 다음 우리를 위해서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다시 한 번 우리의 심령 속에 하나님의 형상을 새겨 넣으사 복되신 하나님과 더불어 살며 그 복되신 하나님을 누릴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주님께서 세상에 오신 큰 목적입니다. 바로 이 목적 때문에 세상이 지금도 보전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충분한 수의 사람들이 세상에서 온전히 구별되어 거룩함을 입게 되자마자 하늘은 두루마리 말리듯이 할 것이고, 원수들은 뜨거운 불 속에서 들어갈 것이며,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불타 버릴 것입니다.
성령의 거룩케 하심이란, 우리 복되신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 바로 그 ‘거듭남’입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바울은 그것을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엡 4:23)라고 표현했습니다. 성령님의 임재가 없으면 어떤 사람도 주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참된 지체로 우리가 불려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확실한 사실입니다.

2. 성령을 받았는지의 여부를 가늠하는 성경적 표지들
저는 이제 우리가 진정으로 성령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몇 가지 성경적 표지들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1) 성령을 받은 자는 기도합니다
첫 번째 표지로 저는 기도와 간구의 영을 받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항상 은혜의 영을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회심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은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행 9:11)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가 회심했다는 것을 아나니아가 믿게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그런 증거를 강력하게 제시하셨던 것입니다. 성경에서 택한 백성들은 또한 하나님께 “밤낮 부르짖는”(눅 18:7)자들로 묘사됩니다.
성령께서 행하시는 한 가지 큰 일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에 못 박히신 구속주의 충분한 공로를 힙입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새롭게 해 주시는 은혜를 주십사”하고 간절히 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자신의 영적 태만을 깨달은 사람은 항상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행 22:10)라고 울부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눈먼 바디매오의 언어대로 하면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라고 부르짖게 됩니다.
복되신 예수님께서 한량없이 성령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은혜의 보좌 앞에 자주 나아가는 일보다 더 그 점을 분명하게 드러낸 적이 없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에서 그분이 자주 혼자 산에 가셔서 기도하셨다는 것을 읽습니다. 그분은 새벽 미명에 기도하러 일어나셨으며, 온밤을 지새워 기도하기도 하셨습니다.
거룩하신 예수님과 함께 성령에 동참하게 된 사람들은 누구나 다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만큼 기쁜 일이 없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자주 경건한 기도로 거룩한 손을 들고 마음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간구의 영이 자주 심각하게 손실되고 부패되는 경우가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으로 성령을 받은 자들 속에서도 한동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영적인 메마름과 영혼의 척박한 상태 때문에 기도의 의무에 있어서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뒤로 물러가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들은 이것을 자기들의 십자가로 여기고 예수님을 찾는 일을 계속합니다. 참으로 슬픈 일이지만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께 가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자신들의 영적인 무감각함 때문에 그전같이 강하게 애정을 발휘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로운 어떤 이유들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그러한 무감각을 경험하도록 내버려 두십니다.
명목상 신자에게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전혀 기도하지 않거나, 골방에 들거간다 할지라도 그저 습관대로 마지못해 기도하여 자기의 양심을 만족시키는 정도밖에는 하지 못합니다. 반면에 참된 신자는 매일 음식을 먹어야 사는 것처럼 기도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그는 자기 영혼이 기도를 통해서 실질적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자기 몸이 음식을 통해서 양분을 섭취하고 지탱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2) 성령을 받은 자는 고의적으로, 또 습관적으로 죄를 짓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은 것을 보여 주는 표지로 성경이 말하는 두 번째 요점은 ‘죄를 (계속) 범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요 3:9). 그는 죄를 지을 수도 없습니다.

                                         ...중략...

3) 성령을 받은 자는 세상을 이깁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를 알아보는 세 번째 표지는, 세상을 이기는 우리의 ‘이김’입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요일 5:4). 여기서 사도 요한이 표현한 세상이라는 말은 다음의 말씀을 통해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요일 2:16).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을 이긴다는 뜻은 우리가 그러한 것들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을 따라가거나, 또는 그러한 것들에 유혹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난 사람이면 위엣 것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영혼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매력을 느낍니다. 그것이 그의 생각을 하늘로 향하도록 강력하게 이끕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갈급해하듯, 그 영혼 속에 하나님을 향하여 매력을 느끼는 것이 그 영혼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누리고 싶은 갈망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하나님 나라의 일에 사로잡힌 나머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을 등한시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참으로 신령한 사람은 감히 하루도 게을리 지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썩을 양식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하지만, 영생을 얻도록 하는 양식을 확보하는 일을 가장 우선에 둡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자기 형제들보다 높여 주시는 경우가 있다고 합시다. 요셉이나 다니엘처럼 말입니다. 그러한 경우에도 그는 자신을 이 땅에서 나그네와 순례자로 여깁니다. 그는 새새명의 원리를 받았기 때문에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합니다. 그는 불멸에 대한 소망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이 지상에 있는 것들을 바라보되, 헛되고 덧없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그는 이 세상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속한 사람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도록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는 하나님 외에는 어떤 것도 그의 영혼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항상 찬미를 받으실 예수님은 세상을 이기는 것에 대한 완벽한 예를 보여 주셨습니다. 예순님께서 끊임없이 선을 행하며 두루 다니셨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 속에서 항상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곳에 계시든지 그의 대화는 항상 하늘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한 성령 안에서 주님께 연합된 사람은 그의 사상과 말과 행동들을 사용하여, 그가 하늘에 속했다는 것을 온전히 증거합니다.
반대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땅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세상적입니다. 신령한 것들을 분별할 만한 영적인 눈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한 그 사람은 항상 이 세상에서의 행복을 추구합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 그 행복을 얻은 적은 없고, 얻지도 못할 것이며, 얻을 수도 없습니다. 그 사람은 위로부터 나지 않았기 때문에 본성적으로 연약한 심령으로 말미암아 항상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그는 뱀의 저주를 함께 받아 평생 동안 땅에 속한 먼지를 먹고 살게 됩니다.
4) 성령을 받은 자는 사랑할 줄 알고, 사랑합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았음을 증거하는 성경적인 네 번째 표증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요일 3:14). 또한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라고 우리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일 뿐만 아니라 복음의 완성도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6)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말하는 사랑을 성품의 부드러움과 자애로움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세상적인 동기에서 나온 사랑으로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왜냐하면 거듭나지 않은 죄인도 그러한 사랑은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서 우러나온 우리 형제들에 대한 사랑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에 모든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그들은 특별히 선한 사람들을 사랑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 속에서 은혜를 보고, 그들이 진지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적 사랑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제자들에게 주신 새 계명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 대상이 ‘새롭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사랑이 발견되는 동기와 모범에서 새롭다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그 계명의 동기와 모범입니다.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사람 때문에 유명해졌습니다. 그래서 “이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서로 사랑하는지 보라”는 말이 속담이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우리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준다 할지라도 이러한 사랑이 없이는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고전 13장 참고).
더 나아가, 이 사랑은 특별한 부류의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어 주어져서는 안 되며, 보편적이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품고 있으면 그리스도의 나라를 보게 될 것을 생각하고 기뻐하는 것 외에 다른 어떤 마음도 품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러한 사랑으로 인류를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 심지어 가장 나쁜 사람들도 사랑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고집을 부리며 회개치 않는 모습을 보면서 주님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을 조금이라고 닮은 사람을 만나시면, 특히 그 영혼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떤 젊은 사람이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이 모든 것을 지켰나이다”라고 말했을 때, 그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셨습니다(막 10:21참고).
주님께서는 주목할 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백부장이든, 수로보니게 여인이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든 간에 믿음을 행사하는 방식을 보고 기이하게 여기시고 즐거워하면서 그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주님이 언제 그렇게 하지 않으실 때가 있었습니까?
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인 제자는 모두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모든 자들을 정중하게 감싸 안아야 합니다. 아무리 그 사람들이 믿음의 부수적인 면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할지라도,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점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면 기꺼이 감싸 안아야 합니다.
실로 저는 거듭나지 않은 사람의 마음은 즉시 그렇게 넓어지지 않는다고 확신합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을 진실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차원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의심할 여지 없이 성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고넬료에게 기꺼이 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진실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 좁은 마음이 날이 갈수록 넓어집니다. 또한 막힌 담이 갈수록 허물어지게 됩니다. 하늘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 마음은 사랑으로 더 넓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족속이나 민족이나 언어의 차이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될 것입니다. 모두 한 마음을 가지고 한목소리로 영원토록 보좌에 앉으신 분을 찬미할 것입니다. 

5) 성령을 받은 자는 원수까지도 사랑한다
이제 저는 다섯 번째 성경적 표지를 말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원수까지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원수를 사랑하는 이 의무는 너무도 필요합니다. 그들까지도 사랑하지 않고는 우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낫지 못합니다. 심지어 세리와 죄인들의 의보다 더 낫지 못한 것입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마 5:46).

주님께서는 자신의 본을 보임으로써 그 교훈을 확증하여 주셨습니다. 주님은 피 흘릴 도성을 내려다보며 우셨습니다. 도살할 자에게 끌려가는 양처럼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배반자 유다에게 유순하게 대답하셨습니다. “유다야, 네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눅 22:48). 죽음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자신을 죽이는 그 살인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그것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려운 의무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약속에 참여하게 된 자는 누구든지 그것이 실제적이고 쉽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로서 난 사람이라면 반드시 주님과 같이 되어, 끊임없이 우리를 가장 못살게 하는 원수들마저 주님과 같은 방식으로 사랑함으로써 온전해지기를 기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온전하신 주님, 그분만큼 온전해지지는 못한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악인과 선인에게 골고루 비를 내려주십니다. 또한 의인과 불의한 자 모두에게 해가 비치게 하십니다. 특별히, 우리에게 그의 사랑을 명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보내사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이 우리를 대신하여 저주를 받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를 알 수 있는 여러 다른 표지들이 성경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6).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선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 23).
이와 같은 의도로 주어진 성경 말씀이 허다합니다. 이제 거의 모두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마땅한 의무들을 이해했다고 믿기 때문에, 저는 감히 이렇게 확언합니다. 편벽되지 않게 자신을 점검해 보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 영혼 속에서 앞에서 말한 표지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며, 천사가 자기에게 말하듯이 자기가 죄사함 받았다는 사실이 하늘에서 인친 바 되었음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고, 제 영혼 속에 거룩한 성품이 새겨진 것을 알았습니다. 하늘로부터 온 천사가 저에게 “아들이여, 힘을 내라. 네 죄가 사함받았느니라”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것보다 더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그러한 표증들은 정확한 증거들입니다. 그 표증들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증거입니다. 우리 속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의 표징들입니다. 그러한 것들이 받은 자만 알 수 있는 흰 돌 위에 쓰여져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하늘의 기업을 물려받게 되었다는 보증이기도 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하늘에 속한 영광이 시작된 것이고, 더 나은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하나님의 선물을 계속 행하기만 한다면, 사람이나 귀신들 중 어느 누구도 우리를 더 나은 편에서 떼어낼 수 없을 것입니다.

3. 교리의 적용
이미 제가 말씀드린 대로 세 번째 항목으로, 이미 전해진 교리를 여러 계층의 신앙고백자들에게 적용시켜 보겠습니다.

1) 하나님을 멀리하고 죽어 있는 분들에게
먼저, 허물과 죄로 죽어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우신 것처럼 제가 여러분을 향하여 얼마나 더 울어야겠습니까? 오, 안타깝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아십니까? 거의 기도하지 않는, 아니 결로 기도하지 않는 여러분이 얼마나 무서운 죄를 범했습니까? 하나님께로 거듭나지 않은 여러분은 죄를 계속 범할 뿐만 아니라 마귀의 성품 속에 깊이 젖어 들어 기도하는 것을 조롱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을 이기지 못하고 그 세상에 끌려가되 계속 육신을 위해서만 일을 하고 육신의 정욕을 채우려 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며 원수마저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지 않고, 대신 그 마음이 미움으로 가득 차 있으며, 불의와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겸손히 예수님을 따르는 신실한 자들을 비웃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 죄인들이여, 하나님께서 그처럼 죄에 빠져 곤고한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오도록 허락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혹은 그대들을 하나님 앞으로 오도록 허용하시어 어떤 즐거움을 누리게 하실 것이라고 상상하십니까? 아닙니다. 낙원은 여러분에게 즐거움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에 마귀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 복된 처소에서 누리는 보든 영적인 복락들을 활용하여 자신을 행복하게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빛 가운데 있는 성도들과 함께 하늘에 속한 기업을 복되게 누리기 위해서는 거기에 요청되는 적합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얻는 것이 여러분 삶의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야 합니다. 
죄인들도 어떤 의미에서 의인들과 함께 하나님을 뵙게 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회개치 않은 죄인들은 하나님을 한 번밖에는 뵙지 못할 것입니다. 더 이상 그분을 뵐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마귀의 형상을 지니고 있으니 마귀와 함께 거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성향에 속한 존재는 틀림없이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의 죄 없이 함을 받으라”(행 3:19). 하늘에 가기 위해서는 먼저 성령을 받아야 함을 명심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지독의 저주를 어떻게 피할 수 있겠습니까?

2) 구원받았다는 그릇된 소망에 안주하는 분들에게
다음으로 저는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그릇된 소망에 안주하며 자신을 기만하고 있는 자들에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그들은 좋은 교육으로, 또는 특별한 자제력으로 죄를 짓지 않아 다른 사람들과 같은 횡포한 악에 빠져들지는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들이 성령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그들 스스로가 거듭나지 않았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령의 열매를 맺어 거듭났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까? 끊임없이 기도하고 있습니까? 죄를 계속 범하지 않고 있습니까? 세상을 이겼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대로 여러분의 원수, 아니 모든 인류를 사랑하십니까? 형제들이여, 만일 이러한 것들이 여러분 속에 있고, 흘러넘친다면 하나님을 향하여 확신을 가져도 좋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이 아주 교양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직 회심하지 않았습니다. 아지 여러분은 자신의죄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처음 아담의 성품이 아직도 여러분의 영혼 속에서 왕 노릇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아담이신 그리스도의 성품의 그 자리에 접붙여지지 않는 한,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성품과 교양 있는 교육으로 잘 차려 입고 자신을 기만하면서 아각처럼 “진실로 사무엘 괴로움이 지났도다”(삼상 15:32)라고 스스로에게 말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말한다 할지라도 사무엘이 아각에게 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공의가 여러분을 산산조각 낼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사람들 앞에서 존경을 받는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소돔의 사과요, 눈 덮인 거름 더미요, 회칠한 무덤처럼 아름답지 않게 여겨질 것입니다. 그 속에는 모든 부정한 것과 썩은 것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날 “진실로 내가 너를 모른다”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황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바르게 할 뿐만 아니라 위로를 주기에도 유익합니다.

3) 양자의 영을 받지 못하고 ‘종의 영’에 머물며 두려워하는 분들에게
그러므로 저는 이제 아버지의 이끄심을 받고 있으나 아직도 두려움을 느끼는 ‘종의 영’을 지닌 사람들에게 말씀드립니다. 그 사람들은 앞에서 언급된 표지를 발견하지 못해서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낼 것인가’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 양떼들이여,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현재의 은혜의 상태가 어린아이의 단계에 불과하지만 여러분에게 하나님 나라를 주시는 것이 아버지의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을 인도하며, 여러분이 갈급해하는 것을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셨으니, 또한 그 약속을 이행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피곤하여 낙심치 않는다면 아버지의 약속대로 ‘양자의 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그것을 구하는 일을 계속하십시오. 여러분이 위로부터 거듭난 것과, 하나님의 성령께서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친히 증거 하신다고 느낄 때까지는 기도하기를 쉬지 않기로 결심하십시오.

4) 이미 거룩한 영광에 들어온 분들에게, ‘더욱 나아가십시오’
이제, 거룩하게 하시는 모든 은혜 가운데서 성령을 받은 사람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이 사람들은 그의 영광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복된 성도들이여, 그대들을 칭송하노라! 여러분의 천국이 지상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이미 여러분은 성령의 첫 열매를 받은 사람들이요, 복된 변화가 와서 추수를 마치게 될 날을 인내하며 고대하는 자들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보며 감탄해 마지않습니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위로를 얻고 있으며, 죄악적이고 육신적이며 믿음을 조롱하는 세상이 전혀 알지 못하는 다른 양식이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지배는 안락하며, 그의 짐은 지극히 가볍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새로 태어남의 격통을 통과하였으며, 이제 여러분의 심령 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령하게 형성되어 감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몸은 지상에 있지만 야곱의 사닥다리처럼 여러분의 영혼과 마음은 하늘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믿음과 끊임없는 묵상읕 통해서 복된 천사들처럼 항상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얼굴을 우러러보고 있습니다.
제가 앞으로 나아가라고 권고할 필요도 사실 없습니다. 성령 안에서 행하면 큰 상급이 있음을 여러분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잠시 동안만 여러분의 영혼을 견지하는 인내를 보이라고 권고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이라는 집으로부터 여러분을 건져 내시어 하늘나라의 영원한 기쁨과 말로 다 할 수 없는 행복이 지속되게 하실 것입니다.
무한하신 긍휼의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러한 은혜를 허락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와 성령, 곧 삼위이면서 한 하나님이신 분께 모든 명예와 권능과 영광을 세세 무궁토록 돌릴지어다. 아멘.  

        




유리나 아멘 아멘~!!^^ [ 2019/04/26 ]  
박세철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 2019/04/26 ]  
이시형 말로 다할 수 없는 행복을 주시는 성령님! 제게 그러한 은혜를 부어주소서!
아멘!
[ 2023/1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