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 대각성 연합회
 
 
 

이 시대의 희망은 진정한 복음에 근거한 종교개혁

그 이상의 개혁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노병기 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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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 1
최용환    2019-04-20 13: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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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목자 2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도 나를 아나니,”(요 10:14). 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그분은 양의 숫자도 아시고 또 그들의 이름도 다 알고 계십니다. 자신이 목숨을 바쳐 얻은 양들을 하나하나 다 알고 계시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분은 모두 다 안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였나이다....”(요 18:9).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양들을 아십니다. 양이 몇 마리인지 아실뿐만 아니라, 자신들끼리 주고받는 특별한 정보나 지식들을, 그리고 그들의 언어를 모두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그 양들 한 마리 한 마리를 온 세상에서 단 한 마리밖에 없는 양을 돌보듯 돌보아 주십니다. 그러나 위선자들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마 25:12). 그러나 그분은 자신의 성도들을 아시며, 그들의 슬픔들을 헤아리고 계시고, 그들이 당하는 시험과 겪고 있는 유혹을 다 인지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가정에서 겪어야 하는 시험을 세세하게 살피고 돌보아주시며, 그들 마음속에 존재하는 부패한 것들을 또한 바라보고 계시며, 그들의 방황을 아시고 그들을 양 우리로 다시 데려오는 배려를 아끼지 아니하십니다.


대중적인 언어로 설교하는 좋은 설교자인 매리어트(Dr. Marryat)박사는 어느 설교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저는 강단이 이런 설교자들로 가득 차길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양들을 데려오시기 위해 큰 개를 한 마리 보내십니다." 모르시겠습니까? 양이 방황할 때, 목자는 그들에게 개를 보냅니다. 양을 다시 양 무리 속으로 데려오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양들이 무리에서 떠나 곁길로 빠지려하면 주님은 그에게 마귀를 보내십니다. 그러면 마귀는 그에게 들러붙어 미친 듯이 짖어댑니다. 그러면 양들은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다시 그리스도의 양 우리로 달려오기 마련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목해야할 고귀한 말씀이 여기 있습니다. “내가 내 양들을 알고” 저는 이 말씀으로 인하여 여러분이 어떤 시험에 처한다 할지라도 안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고 우리에 관해 전혀 모르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리고 곧이어 그분이 자비 베푸시는 것을 잊으신 게 아닌가 의심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은혜롭게도 그분은 우리를 아십니다. 우리가 서로를 고소하면, 즉 마귀에게로 돌이켜 그와 한편이 되면, 우리는 형제를 고소하는 자들이 됩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판단한다면 무엇이 그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흠 없음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형제 여러분, 여기에 더 좋은 것이 있습니다.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뭐냐구요? 이겁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그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또 아무도 나의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할 것이니라”(요 10:28). 34년 전 제 마음에 이 말씀이 역사할 때처럼 부드럽고도 강력하게 여러분의 마음을 두드리시길!


저는 지우(知友)들의 추천으로 성직을 얻게 될 때까지도 제 개인적인 삶에 스며있는 부패상을 놓고 기도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당시 벤슨 주교는 황송하게도 저와 교유를 해 주시고 계셨는데, 그분이 저를 성직자로 추천해주었습니다. - 그리고 그 외에도 저를 위해 애써준 일들이 많았습니다. 제 지우들은 아직 이른 시간인 것 같은데도 저를 강단에 세우고 싶어했습니다.


아직 어린 나이인 저를 강단으로 몰아붙였습니다. 젊은 나이에 설교하는 이들이 여기저기 많은데 저는 그들이 어떻게 그 자리에 서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무튼 간에, 하나님께서는 제가 설교하고 사역하는 일에 얼마나 적합한지 아시고 계셨습니다. 저는 수천 번에 걸쳐 기도했습니다. 땀이 비오듯 쏟아질 때까지 그분의 자비에 호소하며, 그분의 부르심이 있지도 않은데 혼자 생각으로 성직으로 나아가는 일이 없도록, 그분의 사역을 침노하는 죄를 범하게 되지 않기를 간절히 간구했습니다. 그 방이 기억나는군요. 글로스터(Gloucester)에 있던 집이었습니다. 그 집이 있는 거리를 지나게 될 때면 저는 항상 그 방의 창문을 올려다보곤 합니다. 그 창문과 침대, 그리고 마루, 다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저는 그 마루에서 무릎을 꿇고 엎드린 자세로 기로를 했습니다. "주님, 저는 못합니다. 전 자만심으로 목이 뻣뻣해지거나 마귀의 비난에 낙심하기가 일쑤일 것입니다. 주님, 제발 가지 않게 해 주소서. 전 여기 옥스퍼드에 2,3년은 더 남아 있고 싶습니다."


저는 150편 정도의 설교를 준비한 후에, 즉 사역에 만반의 준비를 해 놓은 후에 강단으로 나가고 싶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 때를 기억합니다. 하나님과 다투고 씨름하며 기도하던 날들을 말입니다. 저는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 전 아직 때가 아닙니다. 주님의 거룩한 이름으로 설교를 하기엔 아직 어림도 없는 상태입니다. 주님, 제발 저를 놓아주십시오. 전 아직 강단으로 나아갈 만한 수준이 아닙니다."


저는 저의 모든 친구들에게 편지를 써서, 주교가 추천을 거두게 하라고 기도부탁을 했지만, 그들은 끝끝내 저를 강단으로 내몰고자 했습니다. 그때 제 나이 고작 스물 둘이었습니다. 그들의 간곡한 말들이 저의 귀와 마음을 무수히 두드린 연후에, 제 마음에 이 말씀이 들어왔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그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또 아무도 나의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할 것이니라”(요 10:28).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도 복된 주님의 음성이길 원합니다. 제가 그 부드러운 음성을 마음의 귀로 듣고 느꼈던 것과 같은 축복을 느끼길 원합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듣기 전까지, '주여 나를 보내소서. 내가 주님의 뜻을 따르겠나이다.'하는 기도를 해 본 적이 아주 없었습니다.


언젠가 조지아 근처에 있는 도버 섬에서 수주를 갇혀 지낸 적이 있었습니다. 심한 풍랑으로 섬에 고립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150명이나 되는 성도들을 책임지고 있었고, 주중에는 돈이 한 푼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때 한 사역자가(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 분입니다)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경에 “아무도 나의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할 것이니라”라는 구절이 있는데 기억나십니까? 그 말씀으로 평안을 얻으십시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특별한 말씀이 다시 계시지 않는 한은 말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의 어리석은 양들이 늘, 나 이러다 혹시 하늘나라에게 못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곤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는 성경에 이렇게 못을 박아두셨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그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요 10:28). 이 말씀에는 세 가지 중요한 선언, 혹은 약속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는, “내가 내 양들을 알고”인데, 즉 그분이 우리들 하나하나를 알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성도들은 때로 자신들의 더러운 욕망이나 내적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손에서 버려져 멸망을 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다르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주님께서는 그들을 세상에서 자신에게로 데려오셨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을 다시 지옥으로 보내시겠습니까?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주님께 영생을 구하십시오. "그렇게 할 겁니다."가 아니라, 지금 당장 그렇게 하십시오. 어떤 이들은 우리가 백보좌 심판석에서 심판을 받을 것이란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건 말도 안 되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심판을 받는다면, 거기에서 심판 받을 일은 없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의롭게 된다면, 거기서 다시 의롭게 되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분은 양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중요한 맹세이며, 주님은 이를 확실히 보장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마음에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저 세상에 영광스런 미래를 예약해 둔 사람들입니다.


세 번째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은, “아무도 나의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할 것이니라”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양들을 손에 꼭 쥐고 계십니다. 즉, 그분의 권능으로 꽉 붙잡고 계신 것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그분의 손에서 양들을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마귀도, 육신의 욕망도, 눈의 정욕도, 생의 자랑도, 그 어느 것도. 그것들이 모두 달려들어 주님의 손에서 양들을 강탈하려 하겠지만, 어림도 없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무도 나의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할 것이니라” “내 아버지 집에는 많은 저택들이 있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리라. 나는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마련하러 가노라”(요 14:2).


여러분,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그렇게 오래도록 지켜주지 않으신다면 저는 영적으로 몹시 기진했을 것이고, 스스로를 위하여 열렬히 노력하라고 경고하고 있을 것입니다.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이보다 더 여실히 드러내는 성경 구절은 없을 것입니다. 연약한 성도들일지라도(신실한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이 교리를 지키기 위해 싸울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악인도 구원을 영원히 보장 받는단 말인가?" 그들은 이 거룩한 교리를 헐뜯는 자들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 좋은 음식을 망치려 들지만, 우리가 이 음식을 못 먹을 이유는 없습니다. 저는 이 말씀에 여러분을 의탁합니다. 여러분들과, 제 친구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의 양들을 그리스도의 변함없는 사랑과 보호하심에 의탁합니다.


오늘 아침 이 도시의 저쪽 끝에서 마차를 타고 여기에 당도하던 즈음 저는 제 자신이 공개 사형집행장으로 끌려오고 있는 느낌을 느꼈습니다. 마차를 끄는 말이 걸음을 멈출 즈음, 저는 여러분들이 잰 걸음으로 예배당으로 모여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지금 이들은 나의 공개 처형장으로 몰려오고 있구나, 라고 말입니다. 교회에 들어와서 가운을 입으면서, 저는 그리스도를 위해 내 피를 흘리기 위해 옷을 입는 중이리라,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이 땅과 하늘, 그리고 하나님과 거룩한 천사들을 증인으로 채택하고 싶습니다. 제게 성경이 주어졌고, 주교(성공회 주교)가 저를 그의 팔에 안아 주었고, 또 스물두 살이 되기 이전에 벌써 두 개의 교구를 맡기고 자신의 식탁에 동참하게 해 주었지만, 말하자면 사역자로서 오를 만큼 높이 올랐지만, 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위해 사람들 앞에서 고통을 받는 사역 외에는 바란 것이 없었습니다. 저는 처음 그 마음을 가지고 여기 런던으로 왔습니다. 저는 야곱이 지팡이 하나를 들고 강을 건너는 장면을 읽으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지팡이 하나 달랑 들고 여기에 왔다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전 친구도 없었습니다. 저는 옥스퍼드에 친구도 없고 하인도 없었으며, 저를 인도해 줄 사람도 한 명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저를 세우셔서 그분의 거룩한 이름으로 설교를 하게 하셨습니다. 거룩한 성령의 은혜로 말미암아 오늘날까지 이렇게 사역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사역과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애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사람들 역시 저를 사랑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저는 여기와 또 한 장소에 예배당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그분의 이름을 송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처음 조지아(Georgia)로 부르셨을 때, 저는 런던의 사역을 하나님의 손에 의탁했습니다. 런던에 있는 대부분의 교회들이 저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사람들이 밀어닥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12에서 14명의 경관들이 문을 지키고 있던 즈음에, 저를 사역자로 임명하겠다는 데가 수백 군데나 줄을 섰지만, 저는 그 모든 곳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외국으로 선교 여행을 떠났습니다.


저는 그 때와 동일한 목적과 소망을 가지고 외국으로 떠나려 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지역으로 가서 사역을 해야 할 처지입니다. 저 혼자선 그 충격을 감당해내지 못할 테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잘 견디게 해 주시리라고 믿으며, 또한 여러분으로 하여금 저를 복된 하나님께 의탁드려 그분이 저를 통해 그 거룩한 뜻을 성취시키게 해주시게끔 인도해 주시리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 큰 바다를 또 건너가면 이제 13번째가 됩니다. 바다를 건너는 것은 현재 이 시기로서는 별로 큰 일이 아닙니다. 내 영은 어느 정도 사기진작이 되어있을 지라도, 여전히 저의 강함은 연약함 속에서 나옵니다. 저는 저의 부르심의 소명을 명징하게 알고 있으며, 주님은 제 마음에 말로는 다 형용할 수 없는, 타인이 간섭하지 못할 평안을 불어 넣어주셨습니다. 그분의 손에 저는 제 영을 의탁했습니다. 저는 다음의 말들이 여러분의 고백도 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주여, 저를 지켜주소서. 주님의 손에서 그들이 우리 중 어느 하나라도 빼앗지 못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는 저를 지켜오셨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지켜주실 줄 믿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제가 맡아온 교구는 지금껏 아무 일 없이 잘 되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제가 여행을 떠나게 되어서 너무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제 기도를 듣고 계신 그분께서는, 우리 성도들을 잘 지켜주실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이제껏 저는 파벌을 만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 세상 어느 사역자라도, 제가 어떤 사역자를 헐뜯는 말을 했노라고 비난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전 늘 사람들의 손에 힘을 불어넣어 줄 수 있었습니다. 비록 그들 중 얼마는 돌아서서 저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했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저의 영을 소생시키기를 기꺼워하시는 것은 모두 여러분의 기도 덕분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주님께서 앞으로도 여러분으로 하여금 쉬지 않고 기도하게 하시길 소망합니다. 미국으로 가는 도중에 바다에 빠져 죽게 된다 할지라도, 저는 물 속으로 가라앉는 와중에도 이렇게 기도할 것입니다. "주님, 런던을 보살펴 주소서. 영 안에서 교유하던 친구들을 굽어 살펴 주시옵소서"라고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중 얼마는 틀림없이 제가 미국에서 돌아오기 전에 그분 앞으로 불려갈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괘념치 마십시오. 우리가 여기선 헤어지지만, 그 언젠가는 다시 만나 영원을 보내게 됩니다. 우리가 일단 헤어지고 나면 여러분은 저에게 올 수 없고, 여러분도 저에게 올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사실이 저를 가슴 아프게 하고 심히 짓누르지만, 머지않아 모든 이별을 끝이 납니다. 모든 눈물이 훔쳐질 날이 곧 찾아옵니다. 지금 제가 떠난다고 해서 눈물을 흘리는 분은 없겠지만, 언젠가 그리스도 앞에 서게 되면 우리는 눈물을 흘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혹 이중에 아직 그리스도의 양 우리게 들지 않은 분이 있다면 지금 당장 들어오십시오. 오십시오, 어서 와서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으십시오.


서두르십시오, 어서 들어오십시오. 선한 목자시여, 어서 이 혼들을 양 우리로 인도하소서. 자, 이제 이미 그분의 손 안에 들어 있는 분들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방황의 길로부터 지켜주시길 소망합니다. 항상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가십시오. 여러분들이 위대한 목자시오, 혼들의 감독이신 그분을 바짝 따르기만 한다면, 다른 작은 목자들과 관련해서는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붙들어 주시길, 그분의 얼굴빛을 항상 여러분에게 비춰주시길, 그리하여 여러분에게 평안이 가득하시길, 아멘.


- 1769년 8월 30일 수요일, 아메리카로 마지막이 될 선교 여행을 떠나기 직전 런던에서 했던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