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 대각성 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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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 1
Noh Byoung-gi    2015-12-01 18: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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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윗필드의 중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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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윗필드의 중생론

     

     

     

     

조지 윗필드는 영혼에 대한 사랑이 불타는 사람이었다. 그는 최소한 15분을 같이 여행하는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말하지 않고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티머시 스미스는 역사상 그리스도 안의 신생(new birth)의 교리를 윗필드나 웨슬리보다 더 웅변적으로 그리고 분명하게 제시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하였다.

  윗필드거듭남의 교리는 구원 전체의 중심축과 같다.”라고 . 윗필드와 웨슬리에 있어서 거듭남이란 영혼에 총체적인 변화를 가져다주는 갑작스럽고 즉각적으로 일어나는 변화를 가리킨다.

     

  1. 거듭남의 정의

     

  윗필드는 거듭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것은 성령의 강력한 역사로 말미암아 본성이 철저하게, 실제적으로, 내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모든 은혜의 수단들을 끊임없이 사용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선한 생활의 증거로 나타납니다. 그것은 성령의 열매를 산출합니다.” 이와 같이 윗필드는 거듭남을 성령의 역사에 의한 본성의 철저한 변화라고 하였다.

  그는 마음속에서 이루어지는 도덕적 변화가 거듭남인데, 그것은 여러 가지로 불려질 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그러한 하늘의 동반자들과 복된 교제를 나누는 동참자들이 되기 위해서는, 부서진 질그릇인 우리의 타락한 본성에 총체적인 도덕적 변화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의 이해력이 반드시 조명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의지와 이성과 양심이 반드시 새로워져야만 합니다. 우리의 정서는 갱신되어 위의 것을 찾도록 고정되어야 합니다. …… 이러한 도덕적 변화를 어떤 사람은 회개라고 하고, 혹자는 회심이라고 하고, 혹자는 거듭남이라고 부릅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용어가 어떤 것이든지 택하여 사용하십시오. 저는 단지 우리 모두가 이 새롭게 된 것을 가질 수 있기를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성경은 이것을 거룩, 성화,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부르고 있고, 우리 주님께서는 그것을 새로운 탄생, 혹은 거듭남, 또는 위로부터 난다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 그 표현들은 마음과 삶의 실제적인, 도덕적인 변화를 가리키는 말들입니다. 인간의 영혼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거하는 실제적인 참여를 의미합니다.”

  윗필드는 거듭남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혼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진 것으로 자주 말했다. “주님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십니다. 정말 너희는 벌거벗었다! 너희에게 전가된 나의 외적인 의가 어디 있느냐? 너희 영혼 속에 새겨진 내 신적 형상은 어디 있느냐? 진실로 나의 사람인 자들은 내가 모두 성령으로 인쳤는데, 너희는 그 성령을 받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감히 나를 향해 주여, 주여 하느냐? ‘진실로,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하노니,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윗필드는 거듭날 때 마음속에 새로운 삶의 원리가 주어진다고 했다. 이는 오웬 같은 청교도들의 가르침과 동일하다. “위로부터 났다는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마음속에 부여된 새 삶의 원리를 받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을 변화되게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새 생각, 새 말, 새 행위, 새 관점 등을 줌으로써 옛 것이 지나가고 여러분의 영혼 속에서 모든 것이 새로워지게 합니다.”

  요약하면, 윗필드에 의하면, 거듭남은 성령에 의하여 내적인 총체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원리가 주어짐으로 이해력, 의지, 행위 등 모든 것이 새롭게 된다. 윗필드의 거듭남의 정의는 웨슬리의 정의와 똑같다.

     

  2. 거듭남의 필요성

     

  윗필드는 우리가 부패한 성품으로 태어났기에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하였다. “우리는 모두 본성상 죄 가운데 태어났습니다. 마귀만큼이나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던 자들입니다. 전에도 종종 말씀드렸지만,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여러분들은 본성상 짐승과 악마가 뒤섞여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타락한 상태를 스스로 회복시킬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으로 새롭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는 사람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영원히 거하려면 먼저 마음과 삶 속에서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하나님의 존전에는 결코 부정한 사람이 설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과 반대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과 육적이고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의 거룩하지 못한 본성 사이에는 서로 충돌이 일어납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과 죄로 가득한 존재, 정결하신 하나님과 정결치 못한 피조물 사이에 무슨 교통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회개하지 않은 상태, 현재의 기질 그대로 하늘로 들어감을 허락받는다고 하면 하늘이 여러분에게는 지옥이 될 것입니다. …… 그 영광스러운 처소에는 죄나 죄인은 결코 입장이 허용되지 않을 것입니다.”

     

  3. 성령 세례와 거듭남

     

  윗필드는 체험적 성령 세례거듭남을 같은 것으로 보았다. 는 우리가 성령의 불로 세례를 받아야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몸의 지체가 될 수 있다고 . 우리는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하며, 정결케 하는 불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몸의 참된 지체라고 불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것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누구라도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윗필드성령을 받았다는 표증이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사도 바울이 에베소 제자들을 만나 질문한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19:2)라고 질문한 것은 그들이 거룩하게 하시는 은혜 속에서 성령을 받았는가라고 묻는 질문이라고 했다. 즉 윗필드에 있어서 성령의 세례와 성령의 선물과 거듭남은 사실상 같은 것이다. 그의 말을 들어 보자. “우리 주님의 사도들이 성령을 처음 받았을 때는 표적과 기사를 통해서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을 꼭 그와 같은 이적적인 방식으로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도들이 경험한 것처럼 거룩하게 하시는 은혜 가운데서 성령을 받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 일은 세상 끝 날까지 계속 될 것입니다.”

  4. 거듭남은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윗필드는 거듭남은 반드시 느껴야 하는 경험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하나님의 성령이 마치 바람이 우리 몸에 느껴지듯이 우리 영혼에 느껴지지 않는 한, 진실로 나의 형제들이여! 여러분은 주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입니다.” 현대 많은 교인들은 거듭남을 체험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윗필드는 체험적 거듭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가 말씀드리려는 그 다음 요점은 이것입니다. 가장 확증 받고 싶어 하는 문제는, 우리가 체험적으로 그의 부활의 능력을 알았느냐는 것입니다. 곧 우리가 성령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역사하시는 그 강력한 작용으로 말미암아 죄의 죽음에서 다시 살리심을 받아 의와 참된 거룩한 삶으로 나아가게 되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윗필드는 거듭남은 크고 주목할 만하며 놀라운 변화라고 했다. “저나 여러분이 내세의 행복을 위하여 견실하고도 성경에 기초한 소망을 가지려면, 먼저 크고 주목할 만하며 놀라운 변화가 우리들의 영혼에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독자여, 당신에게는 이러한 변화가 일어났는가?

     

  5. 칭의에 대한 강조

     

  윗필드는 거듭남도 강조했지만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도 강조했다. “죄인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의를 굳게 부여잡는 순간, 그의 모든 죄로부터 의롭다 함을 거저 받게 됩니다. 비록 전에는 지옥의 불쏘시개였다 하더라도 결코 정죄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에 의한 칭의를 가르쳤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따라서 여러분 중에 누구도 절망에 빠질 필요가 없습니다. 믿음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 나오십시오. 그가 여러분을 받아 주실 것입니다. …… 그의 의가 여러분에게 전가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 그리스도께 나오되, 가련하고 잃어버린 자로서, 망하고, 저주받은 죄인으로 나오십시오. 그런 태도로 주님께 나아와야 합니다. 그리하여야 주님께서 여러분을 받아 주십니다.”

     

  6. 칭의와 거듭남(성화)의 동시성

     

  윗필드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철저한 내적인 거룩을 주시는 거듭남을 동시에 강조했다. 이것은 그의 신학적 사고에서 가장 중요한 틀이다. 이 점에 있어서 윗필드와 웨슬리는 똑같다. 이런 현실에서 나는 미력이나마 치명적인 잘못을 범하고 있는 사람들을 치유하는 데 힘을 보태고자 합니다. 이들이 잘못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연합시켜 놓은 것[칭의와 성화]을 분리한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이 성화되지 않고, 자신의 본성이 변화되어 거룩하게 되지 않았으면서도 그리스도에 의해 의롭게 되었으며 자신들의 죄가 사함을 받았고 그리스도의 완벽한 순종이 자신들에게 전가되었다고 헛된 망상을 한다는 것입니다.”

  윗필드는 분명히 칭의 다음에 중생(성화)이 온다고 하였다.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의롭다 하신 자들 , 우리가 전에 말한 바와 같이 그들의 죄를 그리스도께서 용서하신 자들 을 또한 거룩하게 하십니다. 즉 그들의 부패한 본성을 정화시키시고 깨끗게 하시고 전적으로 변화시키십니다. …… 성경 다른 곳에서 예수는 우리에게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그는 성화를 칭의보다 앞세우는 자들에 대해서 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술가들과 성직자들이 저지르는 큰 실수에 대해서 알고 계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비록 성화(sanctification)와 내적인 거룩(holiness)에 대해서 말한다 할지라도(사실 그들이 그것에 대해 매우 해이하고 피상적인 방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성화를 칭의의 원인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성화는 칭의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로 보아야 합니다. ‘예수는 하나님께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그리고) 거룩함이 되셨으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7. 거듭남과 그리스도와 연합

     

  윗필드는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날 때 그리스도와 연합이 있다고 보았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17:21). 주님께서는 당신을 진정으로 따르는 제자들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님과 연합될 수 있기 위해 이 기도를 드리신 것입니다. 그 연합은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 사이에 있는 것과 같은 실제적이고, 생명력 있고 신비로운 연합입니다. ……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말씀과 그의 종들의 사역을 통해서 성령에 참여하는 자가 됨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다는 것을 시인해야 합니다.”

   (계속)





이시형 아멘! 제게 전무후무하게 크고 놀라운 은혜를 주소서! [ 2023/1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