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 대각성 연합회
 
 
 

이 시대의 희망은 진정한 복음에 근거한 종교개혁

그 이상의 개혁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노병기 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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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 1
Noh Byoung-gi    2015-12-01 18:3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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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윗필드의 거듭남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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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윗필드의 거듭남 체험

     

     

     

     

     

     

  18세기를 가리켜 종교적 천재의 시기라고 한다. 18세기 영국과 미국에서 일어난 부흥 운동은 사도 시대 이후 가장 위대한 성령의 능력이 나타났던 부흥이었다. 지금부터 소개할 세 사람, 조지 윗필드, 조나단 에드워즈, 존 웨슬리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새롭게 하시고자 18세기 복음주의 대각성 운동(the Evangelical Great Awakening)의 일꾼으로 선택하신 자들이다.

  필자는 조지 윗필드(George Whitefield, 17141770)를 가장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로이드 존스는 그 세기에 살았던 모든 인간들 중에 윗필드가 가장 사랑할 만한 사람이며, “영국이 지금까지 배출한 설교자 중에 가장 위대한 설교자라고 하였다. 설교의 역사를 지은 다간은 사도들 이후 설교의 역사에 있어서 조지 윗필드보다 더 위대하고 가치 있는 이름은 없다.”라고 했다. 웨슬리의 전기를 지은 배질 밀러(Basil Miller)설교자로서 바울 이후 윗필드보다 더 큰 명성을 얻기에 합당한 사람은 없었다.”라고 했다.

  18세기 영적 지도자를 지은 존 라일(John C. Ryle, 18161900)은 윗필드, 웨슬리, 로메인 등 18세기 영국에서 부흥을 일으켰던 위대한 영적 거인 11명 중 윗필드를 가장 먼저 거명했다. “내가 제일 먼저 거명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 유명한 조지 윗필드다. 그의 출생 연도를 고려한다면 순서상 첫 번째는 될 수 없지만,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를 공적의 순서에서 첫 번째 자리에 놓고자 한다. 백 년 전 모든 영적인 거장 중에서 윗필드만큼 시대의 요구를 빨리 파악한 인물은 없었으며, 영적인 전쟁의 위대한 사역에서 윗필드만큼 앞장서 나간 사람도 없었다. 만일 내가 윗필드 앞에 다른 이름을 놓는다면 그것은 내가 불의한 일을 행하는 것이 될 것이다.”

  먼저, 조지 윗필드, 존 웨슬리의 영국 복음주의 부흥 운동의 배경을 알아보자. 기독교 역사상 가장 찬란한 부흥과 각성의 시대를 연 조지 윗필드가 태어나기 전 영국은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캄캄한 밤과 같은 시대를 지나고 있었다. 17세기 영국에서는 오웬, 백스터, 번연 등 많은 청교도들이 박해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믿음의 용맹을 떨쳤다. 1689년 관용령(the Toleration Act)으로 비국교도들이 비록 불완전하지만 상당한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18세기가 되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청교도의 불길이 타올랐던 영국은 국교도, 비국교도 할 것 없이 총체적 영적 무기력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라일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국 국교회에는 경탄할 만한 규약과 유서 깊은 예배 의식과 교구 제도와 주일 예배와 천여 명의 성직자가 있었다. 비국교도들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자유가 제한되었고, 통제 없는 강단권을 확보하는 것이 어려웠다. 불행하게도 국교도, 비국교도 할 것 없이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그들은 존재했다. 그러나 살아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깊이 잠들어 있었다.”

  18세기는 이성의 시대였다. 합리주의가 맹위를 떨치며 기독교에 침투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신론을 받아들였다. 이신론이 초자연적 종교, 즉 성경적 기독교에 대해서 맹렬히 공격하는 상황이었다. 교회도 이에 영향을 받아 신앙의 초자연적인 성격을 거부하고 이성주의적인 신앙으로 바뀌었다. 설교도 도덕을 말하는 것 이상의 것이 없었다. 윗필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을 죄에서 건져내어 하나님께 인도하기 위해 필요한 설교는 단지 도덕을 설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강단 거의 모두가 도덕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열심히 배우고자 함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거듭남의 필요성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옛 것은 지나가고 모든 것이 새 것이 되는 일이 영혼 속에서 일어나는 것과 같은 거듭남의 필요성을 알지 못합니다.” 상류층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청교도주의의 냄새가 나는 것은 무엇이든 경멸했으며, 종교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비웃음거리로 생각하는 풍조였다. 하원 의원 중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은 네다섯 명에 불과했다.

  국교회의 감독들은 도덕적 부패의 온상이었다. 볼링브룩(Bolingbrooke)경은 성직자들의 생활양식을 보고 그들을 비난하며 기독교가 당신들처럼 엉터리 그리스도인들의 손에 맡겨져 있으면서도 여전히 생존해 있다니 그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기적이라고 말했다. 사회는 부도덕과 무질서와 가난으로 어두워져 있었다. 하층민들은 무지하고, 교양이 없고, 태만했다. 문맹이 만연했으며, 대중들의 오락은 저속했다. 법은 무자비하게 집행되었고, 감옥은 질병과 불법으로 가득 찼다. 영국 역사에 있어서 그 어떤 때보다 술 취함이 만연했다. 도시와 시골 어디서나 평민의 상태는 짐승과 다를 바 없었다. 이런 시기도 희망이 있을까? 이런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를 위해 열심이 특심한 자들을 예비해 두셨다.

  이제 조지 윗필드의 거듭남 체험을 알아보자. 조지 윗필드는 17141216일 글로스터(Gloucester)에서 벨 여관 주인의 아들로, 6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벨 여관은 글로스터의 중심부에 위치했으며, 그 도시에서 가장 크고 좋은 여관이었다. 윗필드의 가문은 꽤 유력한 집안이었다. 윗필드의 조상 중에는 성직자가 많았다. 그의 조상들 중에는 고조할아버지 이하 5대에 걸쳐서 두 명의 사위까지 포함해 모두 아홉 명이 옥스퍼드 대학교 출신이었고, 그들은 영국 국교회에서 교구 목사들이었다. 이러한 집안의 종교적 자질이 조지 윗필드에게까지 내려왔다고 볼 수 있다. 윗필드의 고조, 증조할아버지는 영국 국교회의 사제였던 반면, 그의 아버지는 포도주 상인이자 여관 주인이었다. 윗필드는 비교적 유복하게 태어났지만, 두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네 살 되던 해 윗필드는 홍역을 앓았는데 부주의로 한쪽 눈이 약간 사시가 되었다.

  아버지가 죽은 지 8년이 지난 후 윗필드의 나이 열 살쯤에, 어머니가 재혼하였는데, 그 후 여인숙 사업은 급속도로 기울기 시작했다. 윗필드가 열다섯 살 되었을 때, 가정의 경제 사정이 매우 좋지 않게 되었다. 윗필드는 어머니를 돕기 위해 학업을 중단하고 일 년 반 정도 여인숙 급사로 일했다. 윗필드는 또래의 친구들이 학교를 가는 것을 볼 때 종종 내 마음이 찢어지는 듯했다.”라고 나중에 술회했다.  

  윗필드는 어릴 적부터 자신의 죄성에 대한 예민한 인식이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을 회고하면서 자신이 죄 중에 잉태되고 태어났다는 것을 충분히 확신할 수 있을 만큼, 자기 마음속에 부패함이 꿈틀거렸다고 말했다. 어릴 때 윗필드는 거짓말, 음탕한 말, 하찮은 농담을 늘 입에 달고 다녔으며, 때때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저주를 하기도 하였다. 어머니 주머니에서 아무 생각 없이 돈을 꺼내기도 했다. 주일성수를 지키지 못한 적도 수차례 있었고, 카드놀이와 연애 소설을 좋아했다. 그러나 윗필드는 어릴 때부터 종종 죄에 대한 각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중에도 복된 성령께서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의 마음 위에 운행하고 계셨음을 회고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항상 목사 역할 놀이 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종종 기도문을 읽는 등 목사 흉내를 냈다.

  일 년 반 정도 여관에서 급사로 일한 후 그는 다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17세쯤 되었을 때 특이한 꿈을 꾸었다. 윗필드는 시내 산에서 하나님을 뵙기로 되어 있었으나 하나님 뵙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꿈을 꾸었다. 윗필드는 이 꿈에 매우 강한 인상을 받았다. 어떤 부인에게 이 꿈 이야기를 하자 그 부인은 조지, 이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이야.”라고 그에게 말해 주었다. 그 후 어느 날 밤에 어머니의 심부름을 하기 위해 가고 있을 때 속히 설교를 해야 한다는 설명하기 힘든 매우 강한 인상이 그의 마음에 떠올랐다. 집에 와서 이것을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어머니는 요셉의 부모들처럼 무슨 말을 하고 있느냐? 제발 부탁이니 입 조심 하여라.” 하며 꾸짖었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가 볼 때 이것은 하나의 예언적 인상이라고 볼 수 있다.

  어릴 적부터 목사가 되기를 소원했던 윗필드의 길을 하나님께서 순조롭게 예비해 주셔서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17327월 근로 장학생으로 옥스퍼드의 펨브로크(Pembroke) 칼리지에 입학하게 되었다(18).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윗필드는 윌리엄 로(William Law, 18681761)경건한 삶을 위한 진지한 부르심(A Serious Call to a Devout and Holy Life)그리스도인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을 읽고 강한 감동을 받았다. 윗필드는 옥스퍼드에 오기 전부터 소문에 의해서 홀리 클럽”(Holy Club)을 알고 있었다. 윗필드는 당시 학교의 모든 사람에게 경멸을 받으면서도 개의치 않고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가득했던 홀리 클럽 회원들을 동경했다. 그러나 그 자신이 다른 학생들과 신분이 다른 옷을 입고 있는 근로 장학생이었으므로 그 모임에 들어갈 수 없었다. 일 년 가까이 멀리서 선망만 하던 윗필드는 1733년에 찰스 웨슬리(17071788)의 소개로 드디어 홀리 클럽에 가입하게 된다. 1학년이 끝나갈 무렵, 찰스 웨슬리가 윗필드를 아침 식사에 초대함으로써 윗필드와 홀리 클럽의 접촉이 시작되었다.

  윗필드는 찰스가 그에게 준 책을 읽고 그동안의 신앙관이 완전히 바뀌게 되는 중요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것은 스코틀랜드 사람 헨리 스쿠걸(Henry Scougal)이 쓴 인간의 영혼 속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The Life of God in the Soul of Man, 1677)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그 책을 읽고 윗필드는 외적인 행위나 의식으로는 영혼이 구원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때까지 윗필드는 신생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예배, 기도, 금식, 성찬 참여, 선행, 도덕적 삶 등과 같은 경건한 삶을 열심히 살면 천국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책을 읽고 그는 지금까지의 그런 생각들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처음 그 책 앞부분을 읽으면서 윗필드는 저자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의아해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웃들과 평화롭게 살고, 절제된 식습관을 지키며, 예배를 충실히 드리고, 교회와 골방에 자주 가며, 때때로 손을 내밀어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면, 그들은 신앙적으로 할 일을 충분히 다했다고 생각한다.” 윗필드는 생각했다. “세상에! 이것이 참된 신앙이 아니라면, 무엇이 참된 신앙이란 말인가?” 이 도전 앞에 그는 자신의 회계 장부를 들여다보면서 파산을 직면해야 하는 사람처럼 가슴이 뛰며 떨리기 시작했다. 그의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 책을 불태워 버릴까? 집어 던져 버릴까? 아니면 부딪쳐서 파고들 것인가?’ 그는 파고들기로 하였다. 그 책을 그의 손에 쥐고 하늘과 땅의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었다. “주여, 제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제가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부디 기독교 신앙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사 나로 하여금 결국에 멸망당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이 기도에 대한 응답은 금방 왔다. 하나님께서는 곧 가르쳐 주셨다. 몇 줄 더 읽어 내려가자 그 책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쓰여 있었다. “참된 신앙은 하나님과 영혼이 연합되는 것이며, 내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그 즉시에 신적인 빛의 광선이 그의 마음에 꽂혔으며, 바로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윗필드는 자기가 발견한 사실, 신생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기쁨으로 가족들에게 편지로 알렸다. 윗필드는 가족들이 기뻐하며 자기 편지를 받을 것이라고 상상했으나, 가족들은 윗필드가 정신이 이상해져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후 찰스 웨슬리는 윗필드에게 다른 홀리 클럽 형제들을 점차적으로 소개해 주었다. 윗필드도 이제 그들처럼 규율에 따라 살면서 단 한 순간도 낭비하지 않고 살려고 최선을 다했다. 먹는 일에 있어서나 마시는 일에 있어서나, 무슨 일을 하든지 그는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려고 노력했다. 윗필드도 그들처럼 다른 학생들의 조롱을 무릅쓰고 그리스도 교회(Christ Church)에서 매주일 성찬을 받았고,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금식했다. 예수 그리스도께 좀 더 가까이 가도록 그를 이끌어 주는 방편이라 생각되는 것은 하나도 남김없이 시행했다. 윗필드는 메서디스트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