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 대각성 연합회
 
 
 

이 시대의 희망은 진정한 복음에 근거한 종교개혁

그 이상의 개혁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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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 1
최용환    2011-04-13 23:5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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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론2  

IV. 그럼 오늘 본문 말씀에서 더 추론할 수 있는 것 몇 가지만 더 언급하겠다.


1.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말씀을 마음속에 어떤 실제적인 내적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외적인 종교적 의무만 그저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책망의 말씀으로 적용해도 되겠다.



우리 주변에 공적이든 사적이든 정규적인 기도 모임에 정확히 시간을 지켜 참석하고 성찬식을 받을 때도 그러하며 때때로 금식을 하는 등 종교적 열심이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들은 종교적 제도에 순응하면서 종교적 방법에 단지 안주할 뿐이며 이것으로 다 됐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이 정확한 사실을 안다면 모든 제도화된 방법들, 예를 들어 은혜의 수단들 곧 기도, 금식, 하나님 말씀을 듣고 읽기, 성찬을 받는 것 등은 우리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내적으로 더 나아져야 하는 것이다. 심령 속에 영적 생명이 옮겨져야 한다.



종교적 의식은 수단일 뿐이요, 종교의 전체가 아니라 부분일 뿐이다. 바리새인보다 더 종교적인 자들이 누가 있는가? 바리새인은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자기가 소유한 전부의 십일조를 냈다. 하지만 우리 구주께서 직접 우리에게 말씀하셨듯이 이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지 않았다.



어쩌면 당신도 바리새인과 같이 자주 금식하고 오래 기도하고, 헤롯과 함께 기쁘게 좋은 설교를 듣는 자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당신이 여전히 헛되고 하찮은 것에 집착하고 부도덕하거나 세속적인 마음이라면 그저 간신히 교회나 오가고 외적 의식이나 지키는데 급급한 사람들과 좀 다르다고 해서 당신이 그런 사람들보다 뭐가 더 나은가? 오히려 당신이 그런 사람들보다 훨씬 더 나쁘다. 당신이 거룩한 종교적 수단을 이용하고 남용하는 것을 보면 다른 사람들은 그런 것들이 별개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따라서 당신이 그들보다 더 큰 아니 최대의 저주를 받게 된다.



2.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말은 형식적 종교 활동에 열심인 자와 다른 어떤 부류의 집단을 분별하는데 유용하다. 사람들 중에는 근거도 없는 가정에 기초하여 약간의 도덕적 덕목을 잘 지키는데 안주하여 자신이 훌륭한 크리스천이라고 거짓 상상을 하는 사람이 있다. 사업적 거래를 공평하게 하고, 식사에 절제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폭력을 가하지 않으면 된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크리스천이 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왜 옛 이교도들은 훌륭한 크리스천이 되지 않았는가? 이들은 선량한 도덕적 미덕을 지키는 부분에서는 상당히 뛰어났는데도 말이다. 또 성 바울이 개심하기 전에 모든 선한 양심에 따라 살았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바울은 그런 인간적 본성의 일에 의존하는 모든 것을 비난하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를 바라고 부활의 권능을 알고, 성령의 받았다는 경험적 증거를 갖기를 바랐다. 그 성령은 주님의 죽음으로 사신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바울 자신에게 획득되고 적용되었다.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전체적으로 정리해 보자. 은총에는 이성적 행위도 포함되어 있다. 기독교에는 당연히 도덕성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가 단지 도덕주의자라면, 즉 성령의 강력한 작용으로 내적으로 이루어진 변화가 없다면 우리의 도덕적 행위는 어떤 새로운 본성의 원칙에서 나와야 한다. 내적 변화가 없다면 우리가 아무리 스스로 크리스천이라고 말한다 할지라도 심판날에 벌거벗은 자로 나설 수밖에 없다. 즉 심판의 현장에서 의롭다함을 받기 위한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지 않은 자의 무리에 속하게 된다는 말이다. 의의 옷을 입지 못했으니 당연히 자신의 심령에 거룩함이 충만하지 않을 것이고 이것이 없이는 하나님의 복락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3. 부분적인 변화만으로 안주하는 사람, 즉 철저하고 실제적이며, 내적인 마음의 변화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는 저주가 좀 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세상과 조금만 친해도 세상적인 특징들이 우리에게 나타난다. 과거에는 내놓고 세속적이던 사람이 자신의 악행의 결과를 보고, 또 그로 인해 세속적으로도 많은 좋지 않은 일들이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것을 알고 말하자면 어느 날 갑자기 교양있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도 않지만) 그래서 자신들이 매우 종교적이라고 뻐긴다. 왜냐하면 과거의 자기들 모습과는 조금이나마 다르고 한때 드러내놓고 사악했던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숨겨진 애착의 범죄 등을 지니고 있게 될 것이며 몇 가지 집착하는 세속적인 모습이 있어 이것과 완전히 결별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완전히 죽이지 못한 어떤 숨겨진 탐욕, 애써 뿌리 뽑지 못한 어떤 못된 습관과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허탄한 인간아 알고나 있느냐. 당신이 누구든 하나님 우리 주께서 당신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당신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철저하고 건전한 회심이 조금이라도 부족하게 되면 당신은 하늘나라에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속된 것에서 교양있는 것으로 돌이키는 것으로는 안 된다. 당신은 문화적인 것에서 거룩함으로 돌이켜야 한다. 당신의 심령 안에서 일부만이 아니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어야 한다.” 단 하나만 부족해도 당신에게 유익하지 않다. 간단히 말해, 당신은 거의(almost) 새로운 피조물이 아니라, 완전히(altogether)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한다. 전적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당신은 크리스천이라고 자랑해봐야 헛짓거리이다.



4.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말은 모든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적용되는 규정이라 하겠다. 교파와 나이와 기타 그 사람 자체를 판단할 수 있는 학위나 자질 등에 관계없이 말이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 유일하게 확고한 구원의 기초이다. 이 기초 위에 죄 사함과 평안과 행복의 굳건한 토대를 확고하게 세울 수 있다.



우리는 외적인 공표라는 부러진 갈대(믿을 수 없는 것)에 참으로 의존하려 한다. 우리는 이교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술 마시지 않고 정직하며 도덕적인 삶을 사는 한 그 정도면 충분히 선량하다고 생각한다. 공적인 종교 집회에 참석하고 골방에서 꾸준히 기도하는 것으로 안전한 상태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삶을 개혁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고, 우리의 심령을 변화시키지 않고, 오로지 거룩한 은총의 무수한 표출 방식으로 이용되지 않는다면 앞에서도 말했듯이 지금 또 반복하여 말하면 당신은 기독교와 아무 관계가 없다.



자 우리 모두 심각하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우리 마음속에 던져 보자. 우리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는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인가, 아닌가? 지금 현재 새로운 피조물이 아니라면 적어도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위해 일상적으로 노력하고 있는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데 필요한 모든 은혜의 수단들을 쉬지 않고 의식적으로 활용하고 있는가? 금식하고 깨어 기도하는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게으르게 굴지 않고 수고하여 애써 노력하고 있는가? 한 마디로 우리 자신의 의를 부인하고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에 들어서 있다. 좋은 씨앗이 우리 마음밭에 뿌려져 정규적이고 지속적인 모든 은혜의 수단들을 통해 적절하게 물과 영양을 공급받으면 영생으로 자라난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성령에 관한 말씀을 듣기만 하고 경험적으로 그 말씀을 알지 못하면, 전혀 금식하지도 깨어 기도하지도 않고 모든 영적 헌신을 하지 않으면, 즉 그 길이 옳은 길인지 아닌지 한 번 돌이켜 살펴보지도 않고 많은 사람이 그러는 것처럼 우리도 넓은 길로 행하는 것에 만족하게 되면, 단적으로 말해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해 이방인이요, 세속적 마음과 감각적 쾌락으로 살아가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적하는 자가 된다.



이렇게 사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들은 기독교라는 게 껍데기 이름뿐이요 벌거벗은 형식적 신앙고백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이런 지경이라면 그리스도는 헛되이 죽은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죄짐 아래 있는 것이요, 참되고 철저한 회심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낙망하지 말지어다. 구원 길을 내가 말하고 있다. 내 이야기를 신실하게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절대 그리스도의 소유가 아니다.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성령이 여기 당신 안에 거하지 않으면 썩어질 당신 육체는 내세에서도 성령과 함께 거하지 못하게 된다.



내가 진지하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면하노니 성경에서 명령하고 있는 대로 (구원에) 확실한 것에 적합하게 행동하고 참된 크리스cjs으로 살기 바란다. “옛사람과 관련된 대화를 벗어버리고 새사람의 옷을 입어라. 새사람은 의로 참된 거룩함으로 하나님을 쫓아 된 것이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은 분명 엄청난 일이요, 힘든 일이다. 하지만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수많은 심령들이 거룩한 권능으로 도움을 받았다. 왜 우리가 성공하지 못해 절망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손이 짧아 구원할 수 없는가? 우리 선조들의 하나님이 또 그 후손들의 하나님이 되시지 않은가?



그렇다. 의심할 바 없이 그 후손들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단 어느 정도의 고통을 겪게 된다. 탐욕과 결별하지 않으면 안 되고, 세상 친구들과도 관계를 끊게 되기도 하며, 자신의 내면에 있는 열정을 죽이기도 해야 한다. 이런 것들을 우리는 지나치게 귀히 여기기 쉬우며 거기서 떠나기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마치 오른손을 자르거나 오른쪽 눈을 뽑아버fu야 하는 것과 비슷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그렇게 했을 때 어떻게 되는가? 그리스도의 지체, 즉 하나님의 자녀,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자가 되어 지금 받는 고충을 풍성히 보상받게 되지 않는가?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이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면서 엄청난 일이다. 그 와중에 어쩌면 아니 분명히 생각없는 몇몇 인간으로부터 조롱을 받게 될 것이다. 이 자들은 우리가 왜 자기들과 더불어 광란의 일에 몰두하지 않는지 의아해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짓는 성질을 죽이고 세상의 풍속을 따르지 않으며, 성경에서 명령한 대로 하려고 하고, 천국의 대화를 한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우리의 삶을 어리석다고 생각할 것이요, 우리의 끝은 별 볼일 없는 것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도가 되고 영원히 별처럼 빛나게 되는 것이 이 세상에서 우리가 겪게 되는 모든 조롱과 비방과 비난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되고도 남지 않은가?



철저한 회심에 따르는 보상은 사실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평안이다. 회심의 결과로 하나님의 평안이 반드시 온다. 이 평안은 이 세상에서도 누리게 된다. 이 평안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 이상이며 우리는 그 기쁨을 누릴 마땅한 이유를 갖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이 평안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들을 위해 예비한신 자비로운 일들 중 최소한의 것이다. 이것은 영원히 연속적으로 전개될 복락의 시작에 불과한 것이다.



죽음의 날에 회심하지 않고 새롭게 되지 않은 죄인들은 너무나 두려움에 떨게 될 것이요, 새로 태어날 우리에겐 새 생명의 첫날인 이 날에 영원한 행복과 안락의 장면이 우리에게 열릴 것이다. 중생하고 다시 태어난 자들은 복음의 모든 영광된 약속들에 실제로 참여할 자격자요, 이 세상에서나 천국에서나 반드시 행복해야 한다. 이것은 전지전능하고 모든 은혜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자기의 귀하고 멸하지 않는 영혼의 구원에 최소한의 관심이라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이 자기 앞에 주신 약속과 소망과 영원한 행복을 소유하기 위해 자기 마음속에 참되고 내적인 구원에 이르는 변화가 이루어지기까지 쉬지 않고 깨어 기도하고 애써 노력할 것이다. 참된 내적 변화를 통해 진리를 알게 되고, 그리스도 안에 자신이 있음을, 자신이 천국의 유업을 받을 자가 이미 되었음을, 아니 오래 지나지 않아 하늘나라의 실제적 소유자가 될 것임을 알게 된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무한히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