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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1
노병기    2011-03-29 13:4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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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오웬의 중생론  

 

『거룩한 구원』


제38장


존 오웬의 중생론







          존 오웬도 다른 청교도들과 마찬가지로 성령에 의한 철저한 거듭남의 필요성을 매우 강조했다. 그는 중생의 교리가 가장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경멸받고 있다고 했다. “복음의 모든 교리들 가운데서 은혜의 성령의 즉각적이고, 강력하고, 효과적인 역사에 의한 중생의 교리만큼 강하고 교활한 반대에 부딪치는 것이 없는 것처럼, 어떤 사람이 그러한 중생의 경험이나 그것이 이루어진 경로와 방식을 고백하는 일만큼 세상에서 경멸받는 일은 없습니다.”1)


  사랑하는 독자여, 오늘날은 어떠한가? 오웬 당시에는 거듭남의 교리를 강단에서 가르치고, 책으로 출판하는 청교도들의 수가 적지 않았다. 그때에 비하면 현대 교회의 영적인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 하겠는가?


  패커는 “영적인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성령의 조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 오웬보다 더 예민한 의식을 갖고 있는 청교도는 없었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사실이다. 오웬은 거듭남을 이해력, 의지, 정서 등을 포괄하는 본성의 총체적 변화를 가져다주는 성령님의 사역이라고 하였는데, 그 중 특히 이해력에 조명을 주시는 성령님의 사역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이 점에서 에드워즈와 오웬은 많이 닮았다.




1.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것  




  오웬은 성령의 조명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것은 신자들이 이 세상에서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특권”이라고 역설했다.2) 왜냐하면 아버지와 그가 보내신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기 때문이다(요 17:3). 신자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얻는다. 오웬은 이것이 “복음의 가장 주요하고 본질적인 비밀이며 진리”라고 하였다.3)


  오웬은 “신자들이 이 세상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봄으로서 그 영광에 합당하게 변화해 간다.”라고 했다. 그 근거로 그는 고린도후서 3장 18절 말씀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를 인용했다. 그는 말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봄이 없이는 결코 거룩한 도덕적 의무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4)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것은 신자의 영적 경험 중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성령이 영적 조명이 있어야 참 믿음을 가지게 된다. 오웬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에 빛을 비추어 주셔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주는 곳에서만, 우리는 거울을 보는 것 같이 그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으며, 그에 대한 지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아무리 비천한 신자라고 할지라도 그리스도에 대한 실질적인 믿음을 가지게 된다면 세상에서 가장 박식하고 현명한 사람이 이성을 활용해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도 하나님과 그의 지혜와 선하심과 은혜와 그의 모든 영광스러운 탁월함에 대해 더 영광스러운 이해를 가질 수 있습니다.”5)




2. 거듭남의 정의




  오웬은 거듭남을 이렇게 정의했다. “거듭남이란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에 의해서 우리 마음속에 비추어진 구원하는 영적인 빛에 의하여 우리 마음속의 타고난 무지와 어둠과 소경됨이 제거되고, 영적인 생명과 의의 새로운 원리가 우리에게 주어져서 우리 의지의 부패함과 완고함이 제거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영혼 속에 부어져서 우리 정서의 무질서함과 반역이 치유되는 것입니다.”6) 이와 같이 성령님에 의해 이해력과 의지와 정서 등 총체적인 영혼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거듭남이다.


  그는 중생이란 “전 영혼”이 변화되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은 그의 전 영혼과 마음과 의지와 정서가 의롭고 바르게 되어야만 하나님의 요구에 순종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먼저 우리가 거듭나야만 삶이 복음적으로 개혁되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게 됩니다. 중생은 영혼 속에 영적인 생명과 빛과 능력을 주는 새로운 구원하는 원리를 낳는 것이요, 주입하는 것이요, 창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있어야 삶의 복음적 개혁이 뒤따릅니다.”7)




3. 거듭남은 새로운 원리의 주입




  오웬은 거듭남을 초자연적인 원리의 주입으로 보았다. “거듭남에 요구되는 것이 있다면 , 그것은 영적인 생명과 빛과 거룩과 의로움을 갖기 위하여 영혼과 영혼의 기능 속에 새롭고, 실제적이고, 영적인 원리가 주입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야 그것과 정반대되는 원리, 즉 하나님을 거역하여 죄를 짓게 하고, 하나님을 대하여 적의를 갖게 하는 타고난, 습관적 원리를 축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8)


  이 초자연적 원리는 마음과 의지와 정서 속에 주입된다. “거듭남은 새롭고, 영적이고, 초자연적이고, 생명력 있는 원리, 혹은 은혜의 경향성(habit)이 성령의 능력에 의하여 영혼과 마음(mind)과 의지와 정서 속에 주입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믿음과 순종의 영적이고, 초자연적이고, 생명력 있는 행동을 할 수 있는 성향과 능력을 주는 것입니다.”9)


  거듭남은 도덕적 설득 이상의 일이다. “우리는 또한 우리의 회심에 있어서 성령의 전체 사역이 도덕적인 설득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효과적으로 회심하고 참으로 중생된 모든 자들의 영혼 속에 은혜로운 영적 생명의 원리를 주입하여 주는 성령의 실제적인 물리적 작업이 있다는 말입니다. …… 도덕적인 설득은 그것이 아무리 진보되고 발전된 것일지라도, 아무리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영혼에 대해 새롭고 실제적인 초자연적인 힘을 제공해 주지는 못합니다.”10)




4. 거듭남의 성질


 


  오웬은 중생은 '총체적인' 변화일 뿐만 아니라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변화라고 했다. “중생의 기초는 ‘우리의 영이 새롭게 되는 것’이며 혹은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롬 12:2). …… 거듭남의 원리가 우리들 가운데 주입될 때 우리는 그를 ‘새 사람’이라고 부릅니다(엡 4:24). 왜냐하면 거듭남의 원리는 우리들의 심령을 전면적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 거듭남의 원리는 모든 영적이고 도덕적인 행동의 원리가 됩니다. ⑴ 그 원리는 ‘옛 사람’을 반대합니다.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22, 24절). …… ⑵ 그래서 이 사람을 ‘새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새롭게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되기 때문입니다(엡 1:19 ; 골 2:12~13 ; 살후 1:11). 그래서 이 사람을 ‘하나님을 따라 지으심을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엡 4:24). 창조의 역사는 즉각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거듭남을 위한 어떤 준비 과정이 있든지 간에, 창조에 의하여 새로운 사람이 생기는 일은 즉각적으로 일어납니다.”11)


  오웬은 온 영과 혼과 몸이 성화되는 거듭남을 반대하는 자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파기시키는 자들이라고 했다. “더 나아가서 이 사역은 온 영과 혼과 몸의 성화라고 언급됩니다(살전 5:23). 만일 어떤 사람의 삶에 변화가 있는데 ‘도덕적인 덕’에서만 변화가 있다면 온전한 성화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영적인 교훈이 분명하게 성취되지 않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도덕적인 범위에서만 영향을 받은 것이지 성령에 의해서 믿는 자의 온 영과 혼과 몸이 거룩하게 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거듭남의 본질에 대해서, 방편에 대해서, 효과에 대해서 언급한 것이 없다고 주장하고, 거듭남이란 명칭도 없고, 약속도 없고, 거듭남을 일으키는 수단이나 능력에 대한 언급도 없다고 주장하는 무례한 펠라기우스주의자들12)(Pelagian)이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파괴하는 자들입니다.”13)


  오웬은 총체적 거듭남을 반대하는 자들은 죄와 허물로 죽은 상태에 있다고 했다. “저들은 거듭남을 위한 사역을 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기를, ‘길고 지루한 일련의 회심 과정을 거치게 하고, 거듭남의 파악하기 힘든 과정을 통과케 함으로써 사람들의 머리를 수많은 미신적 두려움으로 가득 채우고, 경건한 슬픔을 얼마나 합당하게 느꼈는지 그리고 철저한 겸비의 확실한 징조를 가졌는지 등과 같은 것으로 고민에 휩싸이게 한다.’라고 중상 모략합니다. 만일 이러한 거듭남을 가르침에 있어서 어떤 특별한 사람들이 성경적 근거도 없는 방식으로 회심의 규칙을 만드는 실수를 했다면, 그러한 것들을 숙고하여 반박하는 것은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그들이 말하는 비방들은 명백히 하나님의 사역 자체를 비난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거듭남의 진리로부터 멀어져 간 자들과, 그리스도교 신앙의 능력에서 떨어져 나간 자들과, 복음의 가장 중요한 교리에 대하여 무지한 자들과, 그리스도의 은혜를 내버리고자 하는 자들은, 스스로 목사라고 하더라도, 아니 고위 성직자라 하더라도 우리들의 개혁 교회(reformed church)의 온전한 상태에 슬프게도 불길한 조짐을 주는 자들이라고 믿습니다. 조만간 그들을 바로잡고 억제하지 않는 한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내가 단언하건데 거듭남의 사역의 본질에 매우 정통해야 한다는 것은 모든 복음 전파자들의 필수적인 의무입니다. …… 그렇지 못하면 그들의 직무 중 어떤 한 가지도 바르게 해낼 수 없을 것입니다. 만일 복음 전파자들의 말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죄와 허물로 죽은 상태에서 태어난다면, 그리고 그들의 거듭남을 위한 도구로 하나님께서 복음의 사역자들을 임명하셨다면, 이러한 위대한 거듭남의 본질에 대해서 그리고 거듭남의 방편에 대해서 부지런히 연구하기를 게을리 하는 것은 미친 짓으로 간주되어야 합니다. 사역자가 거듭남의 교리에 대해 무지하거나 소홀히 여기고, 그 자신의 영혼 속에 거듭남의 능력을 체험해 보지 못한 것은 우리들 가운데 생명이 없고 무익한 사역을 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이 됩니다.”14)


    


5. 성령의 일반 은혜와 특별 은혜의 구별




  조나단 에드워즈는 『신앙 감정론』 각주에서 성령의 일반 역사와 구원 역사에 대한 존 오웬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 에드워즈가 성령의 일반 은혜와 특별 은혜를 구별한 것은 오웬이 구별한 것과 같다. 다음은 『신앙 감정론』의 각주에서 에드워즈가 오웬의 『성령론』을 인용한 글이다. “성령의 일반적인 역사로 처음 감동을 받은 사람의 마음속에 미치는 효과는 그 마음에 계시된 것들의 사랑스럽고, 영적인 본질과 탁월성에 대한 기쁨과 만족과 충족감을 줄 정도는 아닙니다. 구원을 주시는 성령의 조명의 참된 본질은 다음과 같은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즉 영적인 것들에 대한 직관적인 통찰력과 전망을 줍니다.”15) 






6. 거듭남과 회심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오웬은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령에 의해 그들이 살아납니다. 그들의 믿음은 그들에게 수여된 성령의 열매일 뿐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성령을 주셔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소원을 두고 행하도록 그들 안에서’ 행하십니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어떤 선한 일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 성령이 부여되는 것은 우리 안에 주어지는 모든 다른 은혜보다 본질의 순서상 앞에 옵니다.”16)


  그러므로 오웬은 신자들이 성령님께서 자기에게 역사하셔서 믿음을 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고 다. 그는 ‘믿음과 회개와 회심 자체가 하나님의 역사’라고 말했다. “회심의 일 자체, 특히 믿음의 행위나 믿음 자체는 분명히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 즉 하나님에 의해서 우리 속에 일어나는 것,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또한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회개함을 주신다’고 합니다(딤후 2:25 ; 행 11:28). 이 모든 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해야 할 것들입니다. 우리의 회심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실 때 역사하신 그 능력의 지극히 크심으로 우리 안에서 실제적으로 믿음과 회개를 이루어 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믿음과 회개를 우리에게 부여해 주시기 때문에, 그것들은 오직 우리 안에 주어진 그분의 은혜의 결과인 것입니다.”17)




7. 거듭남과 회심을 위한 기도의 필요성 : 은혜의 방편




  오웬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회심시켜 주시도록 기도해야 할 것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의 교회가 항상 기도해 온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설득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직접 우리 안에서 그 일을 이루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참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속에서 그 일을 효과적으로 이루어 주실 것을 위해 부단히 기도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들을 회심시켜 주시고,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그들 속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해 주실 것과,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들에게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이 자라가게 하여 주실 것은 물론,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쁘신 뜻을 따라 이 모든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 우리가 뜻을 가지고 행할 수 있도록 위대한 권능으로 역사해 주실 것을 위해 기도한다는 말입니다. 실로, 자신에게는 위와 같은 능력이 없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을 진지하게 간구하였던 펠라기우스주의자는 세상에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기도했다면 그들의 기도는 그들의 신앙 고백과 일치하지 않는 것입니다.”18) 


  오웬은 신자는 모세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방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열심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모세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마음눈을 밝히사 그것을 보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사 하나님을 알게’(엡 1:17)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19) 청교도들은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조명과 믿음을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하라고 가르쳤다.


  우리가 성령의 유효한 사역으로 구원에 이른다고 할지라도, 우리 자신의 의무를 행하는 데 나태하거나 소홀해서는 안 된다고 오웬은 강조했다. 그는 인간의 노력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외적인 은혜의 수단을 부지런히 적용한다고 중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별하고, 유효하고, 내적인 성령의 사역이 없이는 사람의 심령이 거듭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하나님은 사람들이 외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에 부지런히 참여할 경우 유효한 은혜 속에서 그들을 만나 주십니다.”20) 


  오웬이 말하는 또 다른 대표적인 은혜의 방편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은혜의 외적 방편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사람의 영혼에 믿음을 낳게 하는 평상적인 수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21)


  그는 최대한 근면하게 마음을 쏟고 이성을 사용해서 구원의 진리를 탐구해야 한다고 했다. “은혜의 수단에 접하면서 근면하게 마음의 노력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계시되고 선포될 때 그것을 깨닫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이성과 이해력을 주신 것은 그것들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의무를 알도록 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그리고 설교를 통하여 외적으로 계시되는 영적인 문제들에 이성적인 능력을 부지런히 사용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그 외적인 수단을 통해서 커다란 유익을 얻습니다.”22)




8. 거듭남을 준비시키는 성령의 사역




  오웬은 일반적으로 중생에 앞서는 예비적인 사역들이 분명히 있다고 했다. 그는 중생의 길로 인도하는 사역으로 조명(illumination), 각성(conviction), 개혁(reformation)을 말했다.


  첫째로, 오웬이 말하는 조명이란 이성적인 기능에 의하여 계시의 교리를 알고 이해하며 깨닫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이성의 부단한 기능에 의해 얻어진다. “조명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마음에 임하는 성령의 특별한 영향입니다. 성령님께서는 말씀에 의하여 역사하십니다.” 그는 그렇다고 조명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는 데는 충분하지 못하다고 했다. “조명 뒤에 중생을 위한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야 중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조명되었지만 결코 회심에 이르지 못한 사람도 많다. 그러나 “본질의 순서상 먼저 조명이 있어야 참되고, 실제적인 회심(conversion)이 일어나는 것”23)이다.


  둘째로, 오웬은 회심에 앞서서 죄의 각성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죄의 각성은 말씀에 의한 또 다른 결과입니다. 이러한 죄에 대한 깨달음은 참된 회심에 앞서 일어나는 것입니다.”24) 그는 각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다. “자연인은 죄와 그 비참함 때문에 슬퍼하거나 비탄에 빠지는 일이 없으나 조명을 받은 뒤에 사람은 자신의 죄로 인하여 슬퍼하고 비통해 합니다. 세상적인 근심은 사망을 가져오지만(고후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가져옵니다(고후 7:10).”


  셋째로, 오웬은 “가끔 커다란 삶의 개혁과 정서의 변화가 일어난다.”라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의 마음에 개혁이 일어나고 정서에 변화가 일어나는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중생의 사역이 이 사람 속에 완전하게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25) 이런 사람 중에도 결과적으로 더 큰 죄악에 빠져 병들게 되는 일이 허다하다고 그는 말했다.






9. 믿음을 주시고 거룩함을 낳는 성령의 역사


 


  예비적 사역 후에 참된 회심의 은혜가 주어진다. 오웬은 진정한 성도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1. 한때 ‘허물과 죄로 죽어서’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던 그들에게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믿음과 거룩을 부여하십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신자와 성도가 되어 다른 모든 사람들과 구별됩니다. 이것은 그들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의 결과이자 열매입니다.


  2. 이러한 보배로운 믿음이 생기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성령을 주심으로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바로 그 성령께서 죄 가운데서 죽어 있는 그들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그들을 살리셔서 새로운 생명을 주시고, 영적이고 은혜로운 초자연적인 경향성(habit)을 주시고, 그들을 철저하게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시고, 늘 함께 하는 원리를 주십니다.


  3. 그들 속에 이러한 변화를 효과적으로 능력 있게 산출하시는 거룩하고 복되신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the purchase)이며 중보의 결과입니다. 이 성령님은 영원히 그들 속에 내주하시고, 그리고 영원히 그들과 함께 하십니다. 그들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심으로 그들은 그리스도와 연합합니다. 즉 한 성령이 머리 되신 그리스도 안에 내주하시고, 지체인 그들 속에 내주하십니다. 는


  4. 그들 속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실제적인 상태가 참으로 변화되어 사망에서 생명으로 바뀝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총체적이고 습관적인 불결함이 거룩함으로, 적의와 완고함과 반역의 상태에서 사랑과 순종과 기쁨의 상태로 바뀝니다. 그들의 관계적인 상태도 바뀝니다. 한때는 진노의 자녀이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받아들여지고, 의롭다 하심을 받고, 양자가 됩니다.”26)


  위의 것을 요약하면, 하나님께서 영혼을 살리실 때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신적인 믿음이 생기며(1, 2번),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로 거룩한 순종의 삶을 살게 된다(3, 4번)는 것이다.


  오웬은 우리의 영적 영광에는 두 부분이 있다고 했다. “그 하나는 우리의 외적인 부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값없이 받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호의입니다. …… 또 한 부분은 거룩한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성화입니다.”27)


  이와 같이 오웬은 칭의와 성화의 동시성을 강조다. “성화와 거룩함은 믿고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에게 고유하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과 거룩함은 성향적으로나 실제적으로 분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은 모두 반드시 성화되고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28)






10. 거룩하게 하시는 영과 ‘내주하시는’ 보혜사로서의 성령




  오웬은 믿음을 주시는 성령 ― 오웬은 이것을 ‘거룩하게 하시는 영’이라 했다 ― 의 역사와 ‘위로의 영’, 즉 보혜사로서의 성령을 구별했다. 청교도의 중생론은 보편적으로 성령의 주입이 먼저 나오고 믿음, 회개, 삶의 성화 등이 뒤따른다. 이럴 때 성경적으로 문제가 발생한다. 성경에는 분명히 믿음 다음에 성령을 받는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갈 3:2 ; 요 7:39). 오웬도 청교도 신학의 이 난점을 알았던 것이 분명하다. 그는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해결했다. 즉 믿음을 주시는 성령의 사역과 보혜사로 내주하시는 성령을 구별한 것이다. 이것은 1부에서 필자가 설명한 것과 매우 비슷하다.


  “마치 빈 잔이 물을 받는 것처럼 우리가 거룩하게 하시는 영(Spirit of sanctification)인 성령을 받는 것은 아주 수동적인 행위입니다. 그는 마치 에스겔이 본 골짜기의 마른 뼈들에 바람이 불어 살리듯이 임하십니다. 그는 죽은 심령에 임하여 전능한 권능의 행동으로 그들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그러나 위로하시는 보혜사로서의 성령(Spirit of consolation)은 받아들여지고 환영받는 자로 오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한다’(요 14:17)고 하신 것입니다.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여기서 약속된 것은 바로 위로의 성령입니다. 이 성령님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때가 되면 그들 속에 있게 될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세상이 성령을 받지 못하는 것은 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보혜사로서의 성령은 신자들만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신자들은 그를 알기 때문에 그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능동적으로 성령을 받아들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능력으로 그를 받아들입니다(갈 3:2). 복음을 전파하면 사람들 속에 믿음이 생겨 그들로 하여금 성령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합니다. 그러므로 ‘믿는 것’은 성령을 받기 위한 조건입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7:39). 그러므로 오직 신자들만이 성령을 받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받습니다.”29)


  오웬에 의하면, 거룩하게 하시는 영인 성령의 역사로 믿음을 갖게 되고, 그 믿음으로 보혜사를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기도로 성령을 받습니다. 그는 간구의 영으로 우리에게 주어졌는데, 그 목적은 우리가 보혜사로서의 성령을 간구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눅 11:13).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보혜사로서의 성령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믿음이 이 세상에서 하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30) 오웬은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과 보혜사로서의 성령을 다음과 같이 구분했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로서의 성령은 믿지 않는 마음을 정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임하십니다. 보혜사로서 성령은 이미 믿는 마음에 달콤하게 도움과 격려를 가지고 오십니다.”31)


  오웬은 『성도의 견인』이라는 책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 언약에 있어서, 복되신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우리의 위로를 위하여 구약과 신약에서 거듭 새롭게 말씀되어집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영(Spirit of sanctification)으로서 성령님은 사람들에게 주어져서 그들로 믿게 합니다. 믿는 그들에게는 양자의 영(Spirit of adoption)으로서 주어집니다.”32)


  그는 보혜사가 오셔서 하시는 일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 번째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약속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다(요 14:26). 두 번째는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요 16:14). 세 번째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붓는 일이다(롬 5:5). 네 번째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우리 영과 함께 증거하는 것이다(롬 8:16). 다섯 번째는 우리를 인치시는 사역이다(엡 1:13 ; 4:30). 여섯 번째는 보증물이 되는 것이다(고전 1:22 ; 5:5 ; 엡 1:13~14). 일곱 번째는 신자들에게 기름 붓는 일이다(고후 1:21). 신자들에게 기름 부음은 가르침과 관계가 있다(요일 2:20, 27). 그리고 오웬은 특히 보혜사로서의 성령의 사역 중 위로의 사역을 강조했다. 보혜사는 믿는 영혼들을 떠나지 않고 늘 위로하고, 강하게 하신다(행 9:31).33)






    <그림 14> 구원의 순서 : 오웬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


                                                ↓ 조명


                                ┌─         칭의              ─┐ 


     죄에 대한 각성  →  │                                   │→ 발전적 성화


                                └      보혜사에 의한 성화    ┘


                                              (양자의 영)








11. 거듭남을 체험한 자의 모습




  오웬은 거듭난 자는 죄책뿐만 아니라 죄의 세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고 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정죄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기 위해 죽으신 것과 성령의 은혜를 주신 것을 함께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우리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책에서 자유하게 하실 뿐 아니라 죄의 세력으로부터도 자유롭게 하십니다. 거듭난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더는 죄 가운데 살지 않습니다. 죄가 다시는 우리를 지배하지 못합니다.”34)


  당신은 어떤가? 성령의 조명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고 칭의를 체험하였는가? 그리고 보혜사 성령님이 마음에 내주하셔서 성화의 역사, 즉 죄의 세력으로부터 자유를 주셨는가? 이것이 오웬이 말하는 구원이다.




12. 역사적 계승




  오웬은 교회사를 통하여 참된 중생의 교리는 항상 반대를 받아왔다고 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유일한 질문은 그 중생의 방식과 본질에 대해 던져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중생의 본질은 곧 그것을 위해 일하시는 성령의 역사의 방식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로부터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으로 논쟁되어 왔던 문제이며, 그에 관한 진리는 교회사의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거의 공개적인 반대를 피한 적이 없습니다. …… 그러나 그 진리가 지금만큼 우리들 가운데 몇몇 사람들의 뻔뻔스러움과 무지에 의해 욕설과 비난을 받았던 적은 결코 없었습니다. …… 이 문제를 가지고 가장 부지런히 그리고 성공적으로 살펴보았던 고대의 교회 저술가들, 즉 어거스틴, 힐러리(Hilary), 프로스페르(Prosper), 풀젠티우스(Fulgentius) 등은 인간의 영혼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의 전체 역사를 묘사하였습니다. …… 이들은 비록 그 표현 방식에 있어서는 약간 다양했지만 ― 그것은 그들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의 유익을 생각해서 그렇게 한 것일 것입니다 ― 그 교리의 실체에 있어서는 종교 개혁 이후 우리에게 설교되었던 것과 똑같은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그 교리를 새로 나타난 것이라고 비난했던 것입니다. 그 교리 전체가 어거스틴에 의해 그의 『고백록』(Confessions)에 고상하고도 우아하게 표현되었는데, 그곳에서 그는 그가 가르쳤던 진리에 대한 그 자신의 영혼의 체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35)






13. 어거스틴의 예를 통하여 본 회심의 방법, 순서




   ⑴ 오웬은 그의 책 『성령론』에서 어거스틴의 예를 들어 회심의 방식을 설명했다. 그는 어거스틴의 회심을 보면, 먼저 각성과 갈등의 단계가 있었다고 했다. “사람들을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는 지식 가운데로 부르실 때에 그들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36) “죄에 대한 확신은 스스로의 힘으로 인생에 대한 수정이나 개혁을 이루도록 노력하게 합니다.”37) “개혁을 향한 이러한 노력은 흔히 굉장한 혼란과 고통을 야기합니다. 왜냐하면 잠시 후에 영혼은 갈기갈기 찢어져서 타락된 본성의 힘과 죄에 대한 깨달음의 공포 사이에서 갈등을 겪게 되기 때문입니다.”38)


  오웬은 각성의 단계 이후에 은혜의 원리의 주입 단계가 있었다고 했다. “은혜의 원리 혹은 영적인 생명을 의지 속에 은밀히 전달해 주는” 역사가 뒤따른다. 이때 “영혼 속에서 영혼을 다스리도록 계획된 이 은혜의 원리가 곧 죄를 왕좌로부터 효과적으로 몰아내기 위한 싸움을 시작”하게 된다. “우리가 은혜의 능력 아래에 들어오게 되면 죄는 다시는 우리를 지배할 수 없는(롬 6:14) 반면에, 성령은 완전한 정복을 목표로 육체에 대항하여 싸우기 시작합니다(갈 5:17).”39)


  새로운 의지와 이전의 의지 사이의 이러한 갈등이 있고 난 뒤에 은혜의 원리의 완전한 승리가 주어진다. “이러한 소동의 한가운데서 그분은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그분의 말씀과 함께 그분은 자신의 은혜의 능력을 통해 반역하려는 힘을 물리치시고 죄의 힘을 정복하시며 인간의 마음으로 하여금 영원히 죄를 포기하도록 결심하게 하십니다.”40) 


  오웬은 어거스틴도 새로운 의지와 옛 의지 사이의 갈등을 겪다가 극적인 은혜의 능력의 승리를 체험했다고 소개한다. “어거스틴도 이러한 상황을 경험했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공포를 겪을 그 당시 그는 마치 정신 나간 사람과도 같이 때로는 기도하고, 때로는 울부짖으며, 때로는 홀로, 때로는 친구와 함께, 때로는 걷기도 하고, 때로는 땅바닥에 드러눕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그는 어떤 우연한 사건에 의해 성경을 펴서 읽도록 경고를 받았습니다. 그때 마침 그의 옆에 있었던 책이 바울 서신이었는데 그 책을 펴자마자 그의 눈에 들어온 구절이 로마서 13장 13~14절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자.’ 이 말씀을 읽은 즉시 그의 모든 혼란된 갈등은 끝이 났습니다. 그는 자신의 전 영혼이 전능하신 은혜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에 복종된 것을 발견했고, 이제는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 의지하기로 결심하였으며, 그와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승리에 커다란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 이 이야기의 결말을 그 자신의 말로 직접 들어 보기로 합시다. ‘이 구절들을 읽고 난 후 나는 더 읽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구절의 마지막 부분을 읽었을 때, 마치 평화와 안전의 빛이 나의 마음에 주입되기라도 한 듯 모든 어두운 의심의 그림자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41) 


  ⑵ 오웬은 위와 같이 어거스틴의 실례를 통하여 회심의 방법을 제시한 후에, 다시 한 번 회심의 순서를 설명했다.


  1) 먼저 죄에 대한 분명한 깨달음이 있다. “영혼이 율법에 의해 죄를 깨닫게 되면 자신의 죄책으로 인해 영혼이 처하게 될 영원한 위험에 대한 깊은 인식과 염려가 보통 뒤따르게 됩니다.”42) 이러한 염려는 항상 사람의 마음을 동요시키고 혼란시켜 부끄러움과 슬픔과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두려움은 영혼으로 하여금 여러 가지 의무를 확실히 실행하게 합니다. 즉 그것은 구원을 위해 기도하게 하고, 죄를 절제하게 하며, 삶의 전체적인 변화를 추구하게 합니다.”43)


  오웬은 죄의 각성의 기간과 모습이 사람마다 다르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어둠 가운데서 오랫동안 방황하지만, 어떤 사람은 단 한 번의 은혜로운 방문에 의해서도 그의 영혼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집니다.”44) “이렇게 하여 죄를 확신하게 된 사람의 임무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요 1:18)에 대하여 묻고 탐구하고 알아내는 일입니다.” (하략)                 





정도현 아멘! 감사합니다! [ 2013/11/13 ]